북한 주민들에게 조차 모독당하는 '최고 존엄'

입력 2015-03-17 10:29 수정 2015-03-17 13:44

북한에서 ‘최고 존엄’은 김일성, 김정일 부자 그리고 현재의 지도자 김정은을 지칭하는 말이다. 때문에 남북 및 대미 관계가 꼬일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꺼냈던 게 ‘최고 존엄 모독’이란 말이었다.

북한은 지난 9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남한 통일단체들의 집회에서 ‘최고존엄’을 모독했다며 ‘무자비한 징벌’ 운운하며 협박했다.

그런데 최근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도 ‘최고 존엄’이 갖가지 형태로 모독당하고 있다는 내부 증언이 나왔다.

17일 자유아시아방송(RFA)은 평안북도의 한 소식통을 인용해 “우리에게서 ‘최고존엄’은 곧 돈”이라며 “김일성, 김정일을 ‘최고존엄’으로 떠받들던 시기는 ‘고난의 행군 시대’에 이미 끝났다”고 보도했다.

소식통은 북한의 가정집 마다 보관해오던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화가 있는 단행본(노작), 저작집, 지어는 김일성의 회고록조차 지금은 가정집들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며 “이러한 책들은 이미 휴지와 땔감용도로 사라진지 오래됐다”고 강조했다.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이 있는 인쇄물을 훼손할 경우,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되지만 책 한권을 모두 태워버려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면 처벌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최고존엄’이 수모를 당하는 또 다른 사례로 소식통은 김일성, 김정일 초상휘장(배지)이 주민들 속에서 ‘꼭지’라는 말로 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꼽았다. ‘꼭지’라는 말은 여성들의 유두를 비유한 말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특히 그는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후 새로 만든 김일성, 김정일 ‘쌍상’(배지)은 최근 장마당에서 국돈(북한돈) 5000원에 거래되고 있는데 국돈 5000원이면 입쌀 1kg 값도 안된다고 말했다. ‘최고 존엄’의 가치가 그만큼 헐값이 된 것이란 게 이 소식통의 전언이다.

또 자강도의 한 국경경비대원은 “군인들 속에서 ‘최고존엄’을 숭배하는 징표인 조선노동당원증이 ‘딱지’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며 “‘딱지’는 아이들이 종이를 접어 만드는 놀이감의 일종이다”라고 전했다.

요즘은 노동당원증을 ‘70원’이라고 부르는 은어도 등장했다. 하룻밤 매음(성매매)의 대가가 중국 인민폐 ‘70원’인데 당 간부들이 70원짜리 성 접대를 받고 여성들을 노동당에 입당시켜주고 있다는 의미라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소식통들은 “제 안마당에서도 ‘최고 존엄’이 여지없이 뭉개지고 있는데 아래동네(남한)의 일까지 참견할 주제가 되느냐”면서 북한 주민들에게 ‘최고 존엄’은 내 주머니에 들어 있는 돈밖에 없다”고 냉소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