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한 달을 앞둔 이완구 총리가 ‘책임총리’ 역할의 서막을 열었다. 그 카드는 내각 인사제청권이나 정책 수행 같은 일반적 방법이 아닌 ‘총리발(發) 사정국면’ 조성이다. 돌발 대국민담화를 통해 부정부패 척결을 천명하고 수사기관에 사정대상을 구체적으로 지정해준 것이다.
이 총리는 지난 12일 오후 대국민담화를 발표할 당시 다른 부처 장관들은 제쳐놓고 황교안 법무부 장관만 대동했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고 하던 그의 표정에는 결기마저 느껴졌다. 담화는 정부에서조차 미리 예상하지 못했을 만큼 급작스레 이뤄졌다.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아침까지도 계획에 없었다가 급하게 연락을 받고 정부세종청사에서 정부서울청사로 왔다”면서 “이 총리가 원고부터 발표 시간 등을 직접 결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리가 담화를 통해 방위산업계 납품비리와 해외자원개발 부실 의혹, 일부 대기업 비자금 조성 및 횡령 등을 대표적인 부정부패로 꼽자, 검찰은 다음날부터 대형 비리사건 수사 포문을 열었다.
정치권에서는 이 총리의 사정국면 카드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과의 교감에 따른 역할분담론’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취임이후 공직사회 적폐 척결 등을 매일같이 주문해왔던 박 대통령이 집권 3년차를 맞아 경제 살리기 등 국정 추진에 ‘올인’해야 하자, 이 총리에게 부정부패 근절의 ‘컨트롤타워’를 맡겼다는 해석이다.
이 총리 본인에게도 이런 방법은 자기 목소리를 내는데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 그동안의 총리들이 대통령과 청와대에 가려 빛을 내지 못했던 이유가 ‘형식적인’ 내각 수반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총리는 사정의 흐름을 주도하는 방식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한 것으로 판단된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중심제 정체(政體)하에서는 총리가 인사제청권을 행사한다든지 하는 일이 형식에 머물 수 밖에 없다”며 “이 총리는 이와는 다른 선택으로 책임총리 역할을 자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역대 정부에서 대통령이 아닌 총리가 사정을 주도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김영삼정부 시절 과거정권 비리를 정면으로 겨냥했던 이회창 전 총리 정도가 유일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 이 총리는 15일 경남 창원 3·15아트센터에서 열린 제55주년 3·15 의거 기념식에 참석해서도 “민주주의의 뿌리부터 병들게 하는 부정부패를 철저히 근절해야 한다”고 재차 역설했다.
그는 “취임 이후 최우선 과제로 부정부패와 고질적 적폐를 척결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무관용 원칙에 입각해 (비리를) 엄단하겠다”고도 했다. 또 “부패 없는 깨끗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정부의 모든 권한과 수단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부패 없는 나라, 더불어 사는 사회, 폭력 없는 사회를 만들어 3·15 의거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며 “이를 바탕으로 우리 경제가 힘차게 도약할 수 있다”고 했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
이완구, 총리발 사정국면 조성 통해 책임총리 역할 스타트
입력 2015-03-15 16: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