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대통령 비판 전단을 살포하는 사람을 현행범으로 체포하도록 하는 지침을 일선에 하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지침은 건조물 침입이나 재물손괴, 광고물 무단배포처럼 전단 내용과 상관없는 혐의를 적용하도록 해 대통령 비판을 차단하기 위한 ‘견강부회’식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청 관계자는 13일 “지난해 말 보신각 타종 행사를 앞두고 서울지방경찰청이 경비대책회의를 할 때 대통령 비판 전단 살포 등에 대한 대응 방침을 회의 자료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자료는 ‘교양자료’라는 명목으로 서울시내 경찰서에 하달됐다.
이 문건은 ‘전단지 살포 등 행위자 발견 시 대응요령’이라는 제목 아래 ‘VIP·정부 등을 비난·희화하는 전단지를 살포하거나, 건물 외벽 등에 스프레이 페인트 등을 이용, 낙서하는 행위자 발견 시 대응요령’이라고 추가 설명이 달려 있다. VIP는 공무원들이 대통령을 지칭하는 용어다. 즉 전단 일반이 아니라 대통령과 정부를 비난하거나 비꼬는 전단에 대한 지침이라는 것이다.
문건은 행위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거나 임의동행(연행)을 하도록 하고 있다. 건물 옥상 등에 올라가 전단을 무단 살포하거나 페인트 스프레이 따위로 건물 등에 비방성 낙서를 한 행위는 현행범 체포 대상이다. 문건에는 ‘건조물 침입 및 재물손괴 혐의가 인정되므로 현행범 체포 가능’이라고 적혀 있다. 전단지 살포 행위는 경범죄처벌법상 광고물 등 무단배포 행위에도 해당해 처벌이 가능하다는 설명도 덧붙여져 있다.
길에서 전단을 뿌리거나 나눠주는 경우에는 검문검색을 위한 임의동행을 요구하도록 했다. 문건은 ‘내용 검토를 해야 명예훼손 또는 모욕 혐의 적용 가능 여부를 판단할 수 있으므로’라고 설명했다. 연행할 때부터 처벌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인상이 짙은 대목이다.
문건에는 전단·낙서 내용상 명예훼손 또는 모욕 혐의가 명백하면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다고도 적혀 있다. 그러나 모욕죄는 피해자가 고소해야 재판에 넘길 수 있는 죄다. 서울경찰청 지침은 이런 죄를 경찰관이 임의로 판단해 적용토록 했다는 점에서 과잉 대응이라는 비판이 있다.
경찰은 임의동행에 응하는 사람과 불응하는 사람을 각각을 어떻게 처리하면 되는지도 적시했다. 응하는 경우에는 바로 조사를 하거나 일단 집으로 돌려보낸 뒤 출석조사를 하도록 했다. 전단지는 회수해 유포자 인적사항과 함께 수사부서에 넘기도록 했다.
임의동행을 거부하고 인적사항을 밝히지 않으면 경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현행범으로 체포하도록 했다. 이 내용 아래에는 경범죄처벌법을 위반한 현행범이 경찰의 임의동행을 거절했을 때 체포할 수 있다고 본 법원 판례를 붙였다.
이런 일련의 지침에는 대통령 비판 전단 유포자의 신병을 반드시 확보해 조사하겠다는 의지가 드러나 있다. 임의동행 요구는 형식에 불과한 셈이다. 문건 맨 아래에는 비교적 큰 글씨로 가급적 임의동행을 활용하고 불가피한 경우에만 현행범으로 체포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지만 이는 ‘과잉대처 논란을 의식한 형식 갖추기’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임의동행을 거부하면 현행범으로 체포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역 사거리의 빌딩 옥상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전단지 수백장이 뿌려지자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대통령 비판 전단 대응 경찰 지침 논란
입력 2015-03-13 1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