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는 2008년 5월 한국 방문에 앞서 김영준(56) 옻칠명인에게 작품을 주문했다. MS의 게임기를 담는 박스였다. 게이츠는 2007년 해외 전시장에서 김 명인의 작품을 우연히 보고 매력에 빠졌다. 김 명인은 매화와 나비 무늬가 새겨진 자개옻칠 박스를 제작해 보냈다. 게이츠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하면서 이 게임기 박스를 선물했다.
김 명인이 만든 박스는 3점이었다. 1점은 청와대, 또 1점은 빌 게이츠 재단이, 나머지 1점은 작가가 소장하고 있었다. 김 명인의 소장품이 서울 종로구 한국미술센터에서 28일까지 열리는 ‘나전칠기 그림이 되다’ 전에 출품된다. 이 작품이 일반에 공개되기는 처음이다. 6년간 제작한 ‘상감기법 나전칠기 항아리’, 태조와 세종의 어보(御寶)를 자개로 만든 작품 등 45점을 선보인다.
전통을 계승해 현대적인 예술로 제시하는 김 명인의 작품은 게이츠뿐 아니라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공주 등이 구입했다.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 미사에 사용된 의자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병준 K아트센터 대표의 기획으로 오는 8월 일본에서 한·일 수교 50주년 기념 초대전을 갖는다. 9월 싱가포르, 11월에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서 초대전을 연다.
김 명인이 처음부터 나전칠기를 한 건 아니다. 젊은 시절에는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로 일했다. 10여 년 전 가구공장을 하던 친구 영향을 받아 나전칠기를 공부하면서 자개의 빛과 옻칠에 매료돼 인생 2막을 열었다. 사라져가는 자개를 회화예술로 끌어올린 공로로 2007년 대한민국 신지식인에 선정됐고, 2010년 옻칠분야 명인이 됐다.
화려함의 격조가 빼어난 나전칠기 작품은 보는 순간 탄성이 터진다. 반딧불이 빛처럼 은은한 색채로 신비로움을 더한다. 이일영 한국미술센터 관장은 “작품을 본 외국인들은 자개 빛깔의 영롱함과 오묘함에 끌려 몇 번씩 전시장을 찾아오기도 한다”며 “나전칠기의 우수성과 K아트의 문화융성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02-6262-8114).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전통 나전칠기의 아름다움 세계인 홀린다… 김영준 옻칠명인 해외서 잇단 초대전
입력 2015-03-12 1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