넴초프 피살 미궁 빠지나…“고문 당해” 피의자들 혐의 부인

입력 2015-03-11 21:14

러시아 유력 야권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55) 살해 사건의 주범으로 스스로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던 체첸 내무군 출신 장교가 무죄를 주장하고 나서면서 사건 수사가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수사 당국이 피의자 조사 과정에서 고문을 통해 자백을 강요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면서 강압 수사 논란도 일고 있다. 야권은 수사 당국이 정치 보복 살해설을 잠재우기 위해 범행 동기를 이슬람 연계설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11일(현지시간) BBC 방송 러시아어 인터넷판에 따르면 넴초프 살해 사건의 핵심 피의자로 지목돼 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체첸 자치공화국 내무군 부대대장 출신 자우르 다다예프가 구치소를 방문한 인권운동가들에게 무죄를 주장했다고 전했다. 방송은 또 다다예프의 몸에서 고문 흔적도 발견됐다고 소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구치소 및 교도소 내 인권 상황을 감시하는 ‘시민감시위원회' 부위원장 에바 메르카체바와 대통령 산하 인권위원회 위원장 안드레이 바부슈킨 등이 전날 모스크바 시내 구치소를 찾아 수감 중인 다다예프와 또다른 피의자인 안조르 구바셰프, 그의 동생 샤기트 구바셰프 등을 면담했다.

인권운동가들과의 면담에서 다다예프는 자신이 넴초프를 살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경찰에 함께 체포됐던 내무군 근무 시절 부하 루슬란 유수포프를 석방해 주는 대가로 범행을 인정하도록 강요받았다고 폭로했다. 다다예프는 지난주 체첸 수도 그로즈니에서 체포돼 모스크바로 압송됐다.

그는 만일 체포 당시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으면 자신도 또 다른 용의자 베슬란 샤바노프처럼 살해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샤바노프는 그로즈니에서 경찰과 대치하다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당국은 앞서 다다예프가 혐의를 인정했다고 밝혔고 영장 실질 심사를 맡았던 모스크바 지역 법원 판사도 다다예프가 혐의를 인정해 구속을 허가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다다예프는 또 인권운동가들에게 수사관들의 가혹 행위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며 몸에 남은 수갑, 족쇄, 쇠고랑 흔적 등을 보여줬다.

구바셰프 형제도 면담에서 무죄를 주장하면서 수사관들이 폭행하며 자백을 강요했다고 폭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운동가들은 면담 결과를 토대로 연방교정국장과 연방수사위원회 위원장, 검찰총장 등에게 수사 과정을 점검해줄 것을 요구하는 신청서를 보냈다.

서한에서 인권운동가들은 “피의자들의 신체에 대한 육안 검사를 통해 구바셰프 형제와 다다예프의 팔과 다리에서 타박상, 혈종, 수갑 및 족쇄 흔적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인권운동가들은 그러면서 피의자들에 대한 고문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법의학 감정을 실시하고 피의자들의 안전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시민감시위원회' 위원들과 함께 다다예프를 만난 현지 신문 ‘모스코프스키 콤소몰레츠' 기자도 다다예프가 자백을 강요받고 고문을 당했다는 진술을 했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다다예프는 체포 당시 내무군 복무 시절 부하였던 유수포프와 함께 있었으며 “만일 내가 혐의를 인정하면 그를 풀어주겠다고 해 동의했다”고 말했다. 다다예프는 “유수포프를 먼저 구하고 모스크바까지 나를 산 채로 호송해 가면 법원에서 진실을 밝히겠다고 생각했지만 판사는 발언 기회도 주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다다예프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넴초프 피살 다음날인 지난달 28일에야 내무군 부대에서 전역했다고 주장했다. 내무군 북캅카스 지역 사령부도 이를 확인했다.

인권운동가들의 폭로로 강압 수사 의혹이 확산하자 연방수사위원회는 메르카체바와 바부슈킨을 수사 방해 혐의로 소환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메르카체바는 이에 대해 “수사를 방해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면서 “피의자들의 상태를 확인하기위해 구치소를 방문했고 그들이 구타에 대해 얘기했을 때 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