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을 보기위해 남해안 섬에 가기로 하고 거문도를 첫 행선지로 정했다. ‘나무 위에서 100일, 땅 위에서 100일 피어 있다’는 그 동백꽃 말이다. 동백꽃 좋은 곳으로는 경남 거제의 학동과 지심도, 강진 백련사, 월악산 월남경포대 계곡, 완도와 보길도 등이 손꼽힌다. 그렇지만 심어놓은 동백 말고 자연 상태의 군락으로는 거문도 수월산의 동백터널이 으뜸이라고 들었다. 지난달 28일 아침 일찍 출발한 여수에서 뱃길로 2시간 반 만에 고도의 거문리 포구에 도착했다.
거문도는 동도와 서도, 그리고 고도 등 세 섬으로 이뤄져 있다. 세 섬이 서로 마주보면서 바람과 파도를 막아내기 때문에 그 안쪽 바다(내해)는 잔잔하다. 오후에 비가 예보돼 있어서 파고가 높았지만, 동도와 서도 사이의 연도교(連島橋) 공사현장을 지나 내해에 들어서자 여객선은 언제 흔들렸냐는 듯이 다소곳이 미끄러졌다. 거문도는 일본과 중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데다 잔잔한 내해의 수심이 깊어서 예로부터 제국주의 해군의 전략적 요충으로 여겨졌다. 영국 군대는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다는 구실로 1885년부터 2년간 거문도를 무단 점령했다. 이른바 ‘거문도 사건’이다.
◇ ‘기와집 몰랑’을 따라 걷는 길
가장 작지만 행정 중심지인 고도와 가장 큰 서도를 잇는 연도교인 삼호교를 건너 수월산 탐방에 나섰다. 서도의 정상인 불탄봉(해발195m)에는 일본군이 만든 벙커가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쪽빛 바다가 펼쳐지지만 바람이 거세기 때문에 동백, 우묵사스레피나무들이 왼편으로 누운 채 키가 자라지 못했다. 왼쪽으로는 내해가 보이고, 탐방로 주변에는 생달나무와 같은 상록교목(키 큰 나무)과 식나무, 까마귀쪽나무 등의 상록관목(키 작은 나무)이 어우러져 있다. 털머위, 송악, 고비 등이 많다. 수월산 직전까지 5㎞에 이르는 능선 길은 ‘기와집 몰랑’이라고 부른다. ‘몰랑’은 산마루의 사투리다. 바다에서 보면 이 능선이 장대한 기와집처럼 보인다고 한다. 길옆으로 주민들이 20여년에 걸쳐 쌓았다는 납작한 돌로 이뤄진 탑들이 보인다.
영국해군이 포대를 배치한 곳인 보로봉(170m)을 지나면 낮은 갯바위지대인 무넹이(목넘어)에 다다른다. 보로봉과 수월산을 잇고 있는 무넹이 구간은 태풍이 불 때 바닷물이 넘어 들어오는 곳이라는 뜻이다. 물이 넘나든다는 뜻의 수월산(水越山) 이름도 무넹이에서 비롯됐다. 여기서부터 동백터널이 1.2㎞ 가량 이어진다. 입구 현판은 우묵사스레피, 갯고들빼기, 갯까치수영, 갯무, 해국 등이 이곳에 서식하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돈나무, 왕작살나무, 다정큼나무, 천선과, 광나무 등이 함께 자란다. 동행한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신민경씨는 “수월산에서 2개월마다 관심종의 사진을 찍으며 모니터링하고 있다”면서 “멸종위기종인 매가 살고 있고, 후박나무 열매를 먹는 흑비둘기가 가을철 한 때 나타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 거문도 동백은 땅 위에서도 붉게 타오르고
2월 중순부터 3월초까지 화려함이 절정에 이른다는 동백터널에 동백꽃이 드문드문 피어 있을 뿐이다. 꽃이 없는 개체가 많았고, 피었어도 한 두 송이에 그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땅바닥에 떨어진 동백꽃들이 펼쳐 보이는 싱싱한 노란 꽃술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동백은 12월부터 초봄까지 피고 지기를 거듭한다. 남해안에서 보통 2월말~3월 중순에 가장 많이 피었다가 3월말~4월초에 대거 낙화한다. 그러기에 “가장 눈부신 순간에 스스로 목을 꺾는”(문정희, 동백꽃) 낙화의 장관을 보려면 3월말에 남해안에 가라고 한다.
거문도 동백이 기력을 잃은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마을 주민들은 2012년 8월말 태풍 볼라벤이 휩쓸고 간 이후 동백이 꽃을 제대로 못 피우고 있다고 말했다. 다도해국립공원 오춘수 분소장은 “지난해에는 꽃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였지만 올해에는 그나마 조금 피었다”고 말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관계자는 “여러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거문도 동백터널 상록활엽수림의 종 다양성이 훼손된 탓이 큰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조록나무, 구실잣밤나무. 박달목서 등의 키 큰 관목들이 동백과 어우러져 다양한 수종의 상록활엽수림을 이뤘지만, 수년전부터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면서 큰 나무들을 베어냈다고 한다. 동백을 더 돋보이게 하려는 취지였지만, 결과적으로 동백이 80%를 차지하는 단순림이 돼 버렸다는 것이다. 게다가 약 10년 전까지 몸큰가지나방 애벌레가 창궐했고, 근년의 태풍피해까지 겹치면서 동백은 쇠약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럴지언정 ‘땅위에서도 100일 피어 있는’ 동백꽃은 여전히 아름답다.
일반적으로 나무를 많이 솎아내면 다른 나무도 태풍에 취약해져 잘 넘어진다. 국립수목원 원장을 지낸 신준환 동양대 교수는 최근 저서 ‘다시, 나무를 보다’에서 숲의 구성원리에 대해 “좋은 것만 모아서 좋은 것을 만들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숲을 가꾸더라도 주류인 나무를 솎아주고 나머지를 살려야 다 같이 잘 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자식을 편애하면 가족에 금이 가듯이 생물을 편애하면 생태계에 금이 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 교수는 “이런 도움(솎아내기)도 인공림에만 한정하는 것이 좋다”면서 “자연림은 인간이 알아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과정으로 숲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학자들은 거문도 동백숲이 지금은 쇠약해진 것처럼 보여도 길고 긴 천이과정의 한 단계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동백숲은 머지않아 다시 왕성하게 꽃을 피울 것이라고 본다. 옛날 주된 땔감으로 벌목을 하던 때와 달리 섬의 작은 인구가 숲 생태계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데는 한계가 뻔하다는 것이다.
◇ 전진기지가 겪은 역사의 부침(浮沈)
등대에 도착했다. 1905년 세워진 이 등대는 1903년 건립된 인천 월미도 등대에 이어 국내 두 번째라고 한다. 등대 끝의 관백정(觀白亭)은 39개의 무인도로 이뤄진 백도를 볼 수 있다는 뜻의 정자다. 등대 뒤편 절벽에는 수선화와 유채꽃 등이 피어서 동백꽃의 본격적인 붉은 향연을 놓친 아쉬움을 달래줬다. 맞은편의 동도는 서도와의 연도교 공사가 한창이다. 동도에는 귤은 김유(1814~1884)를 모신 사당인 귤은당이 있다. 김유는 조선 성리학의 6대가 중 한 명인 기정진 밑에서 수학했으나 출사하지 않고, 평생 고향인 거문도와 청산도 등에서 야인으로 살았다. 일설에는 김유의 은둔이 조정에 알려지면서 거문도의 이름 거문(巨文)이 지어졌다고 한다.
다시 고도로 건너왔다. 영국군은 군대 주둔을 위해 고도에 항만을 개발했고, 테니스코트와 당구장을 만들었다. 한반도 최초의 당구장이었다고 한다. 고도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에 예전 영국군 막사였던 거문초등학교가 있고,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신사 터가 있다. 신사 터 높은 자리에 누군가 골프공을 잔뜩 올려놓았다. 일본인들이 신성하게 받들던 신사 받침대 위에서 누군가가 바다를 향해 티샷을 날리곤 했던 것이다. 따라서 스윙을 해 보면서 호쾌함을 느껴본다.
일제 강점기에도 고도는 일본인들의 주요 거주지이자 어업과 물류의 중심지였다. 봄부터 9월까지는 갈치, 가을부터 3월까지는 삼치를 잡는 어업 전진기지로서 거문도는 늘 북적였다. 마을 주민이자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직원인 김기빈(54)씨는 “식민지시대는 물론 1970년대까지만 해도 술집 여종업원이 200명에 이를 정도로 경기가 좋았다”고 회고한다. 거문도 인구는 한창때 1만3000명을 헤아렸지만, 갈치와 삼치 어획고가 줄어든 지금은 2300여명만 남았다. 이곳 어업이 예전만 못한 것은 우리나라 다른 해역과 마찬가지로 저인망 등에 의한 남획 탓이 크다. 남은 주민들도 어업이외에 특산물인 쑥 재배로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 섬다운 섬에 깃든 이야기들
세월호 참사 이후 줄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연간 1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거문도를 찾는다. 대부분 여행사가 모집한 관광객들은 서도나 백도를 둘러보고는 가버린다. 여객선을 운항하는 선사들만 돈을 벌고, 주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거의 없다. 고도의 식당과 여관들만 약간의 돈을 벌 뿐이다. 전남발전연구원 김준 박사(사회학)는 “역사의 섬인 거문도 토박이들이 협동조합이나 마을 기업을 만들어 직접 안내와 역사·생태해설을 맡는 관광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관광객들이 거의 접근하지 않는 고도 뒷산의 숲, 동도의 역사유적 등은 충분히 스토리텔링을 포함한 상품화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된다.
오후에 보슬비는 내렸지만, 풍랑주의보가 없는데도 여객선은 뜨지 않았다. 다음 날도 엔진 점검을 이유로 결항했다. 그렇지 않아도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낡은 배를 운항하지 못하면서 배편이 줄었다. 주중에도 2회 왕복하던 것이 1회로 줄었고, 주말에만 2회 왕복한다. 거문도에 편의점이 아직 없는 것은 육지와 제주도 사이 딱 중간에 위치해 뱃길이 불편한 탓일 게다. 한 번 들어오면 마음대로 나갈 수 없는 곳. 숱한 연륙교가 건설되면서 섬 같은 섬이 줄어들고 있지만, 거문도는 여전히 그렇게 외딴 섬으로 우뚝 서 있다.
여수=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 사진=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
[취재협조=국립공원관리공단 다도해해상국립공원사무소]
[사진설명](위에서부터 순서대로)
- 지고 난 뒤에도 땅에서 피어 있는 동백꽃 / 탐방로 주변의 붉은 꽃잎 / 수월산 동백터널 / 동백꽃봉오리 / 고운 빛깔을 머금고 터뜨린 꽃망울 / 서도에서 바라본 고도와 동도 / 골프연습장이 된 일제 강점기 신사터 / 박달목서 / 까마귀쪽 나무 / 해안절벽에 위태로운 모습으로 서 있는 아차바위 / 거문도 등대 / 거문도 전경
[임항 논설위원의 ‘그 숲길 다시 가보니’] 거문도... 격동의 역사와 붉은 꽃의 사연을 품은 섬
입력 2015-03-11 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