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땀´이 결정적… 도곡동 할머니 살해 용의자 수사 급반전

입력 2015-03-10 17:11
미궁에 빠질 뻔 했던 수사는 현장에 남은 범인의 ‘땀’으로 급진전됐다.

지난달 25일 발생한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수십억원대 자산가 함모(88·여)씨 살해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범행 현장에서 용의자의 유전자(DNA)를 발견했다. 함씨 콧잔등과 입술, 손톱 등 신체와 함씨의 두 손을 묶었던 끈, 휴대전화 충전기 끈에서 같은 DNA가 나왔다. 모두 용의자의 땀에서 채취된 것들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콧잔등과 입술 등에서 나온 DNA는 함씨 입을 틀어막는 과정에서, 손톱에서 나온 건 함씨가 반항하는 과정에서 묻은 걸로 보인다”고 했다.

경찰은 함씨의 친인척과 세입자, 이웃주민, 전화통화 상대방 등 69명의 DNA를 채취해 비교했다. 5년 전까지 함씨 소유의 다가구주택 2층에 세 들어 살았던 정모(60)씨도 ‘전 세입자’로 분류돼 DNA 채취 대상자가 됐다.

동시에 경찰은 사건현장 주변 CCTV 영상을 분석했다. 시신이 발견되기 전날인 지난달 24일 오전 8시47분쯤 함씨 집으로 들어간 뒤 나오는 장면이 찍히지 않은 남성이 용의선상에 올랐다. 경찰은 이 남성의 신원을 알아내기 위해 주변 CCTV 수십대의 영상을 돌려보며 이동경로를 추적했다. 그 결과 영상에 등장하는 남성은 함씨의 집에서 2㎞ 남짓 떨어진 대치동 다가구주택 반지하방에 사는 정씨로 드러났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DNA 대조 결과를 요청했고 지난 9일 “범행 현장의 DNA와 정씨의 것이 일치한다”는 통보를 받자마자 긴급체포했다. 정씨는 인근 인테리어 가게에서 일용직 페인트공으로 일했지만 최근 당뇨병 등 건강 악화로 일을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정씨는 2013년 보험사기 혐의로 실형을 살았고 이전에 5번의 벌금형을 받은 적이 있다. 상당수가 사기 혐의”라고 말했다.

정씨는 10일 오전에 유치장을 나서면서 만난 취재진에게 “살인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정씨가 조사에 전혀 협조 않은 채 진술을 계속 번복하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했다. 경찰은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