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즈 " 리퍼트 대사 위로공연에 눈살-갈라진 한국 사회"

입력 2015-03-10 13:11 수정 2015-03-10 13:16
“한국사람으로서 마크 리퍼트 대사를 찌른 사람을 미워합니다. 미국사람들에게 깊이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이 장면은 역겹네요. 많이 오버하고 있어요. 오히려 한국인들 사이에 미국인과 한미동맹의 이미지를 손상시킬겁니다”(김미현·36)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 것은 빗나간 개인의 일탈적 행동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겁니다.”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주한미대사관 관계자)

미국 일간신문 뉴욕타임즈(NYT)는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의 피습 이후 한국인들의 반응과 여론이 분열되고 있다고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리퍼트 대사의 피습 직후에는 충격을 받은 한국인들 사이에 그의 쾌유를 바라는 여론이 지배적이었으나 이후 일부 시민들의 과도한 사죄 퍼포먼스와 위로 공연이 오히려 주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이 사건을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존 딜러리 연세대 교수는 “한국인들이 처음엔 충격과 연민, 죄의식을 느꼈던 것 같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정부와 정치권이 ‘고립된 사건’으로 드러난 이 사건을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종북몰이와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고 있다”고 NYT에 말했다.

리퍼트 대사는 지난 5일(한국시간) 서울 세종홀에서 열린 조찬강연회 도중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회원 김기종(55)씨가 휘두른 과도에 찔려 얼굴에 80바늘을 꿰매고 왼쪽 팔의 힘줄과 신경을 다치는 부상을 입었다.

리퍼트 대사는 병원으로 이송되면서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며 의연한 모습을 보여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다. 수술받은 직후에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쏟아진 한국인들의 위로와 격려에 감사를 표하면서 한국어로 ‘같이 갑시다’란 글을 올려 ‘대범한 리퍼트’란 칭송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건 직후 중동순방 도중 직접 전화를 걸어 리퍼트 대사를 위로한 데 이어 9일 귀국 직후 세브란스병원을 찾아가 그와 환담을 하기도 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연합대표 등 여야 지도부, 윈펠트 미 합참차장과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사령관 등 미군 고위관계자들의 병문안도 이어졌다.

병실 바깥에는 플래카드와 손팻말을 들고 온 일반 시민들의 격려방문도 줄을 이었다. “리퍼트 대사님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리퍼트 대사님 사랑합니다” “너무 너무 미안합니다”란 메시지가 넘쳐났다.

미안한 마음이 지나쳐서 였을까 주말 들어 병실 바깥에는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도심에서는 리포트 대사 쾌유기원 촛불 문화제가 등장하고 부채춤과 난타공연이 열렸다. 리퍼트 대사에게 전달해달라며 개고기와 미역을 들고 병원을 찾아온 사람도 생겼다. 9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제부인 신동욱씨가 리퍼트 대사의 용서를 구한다며 병원 앞에서 석고대죄와 단식을 벌였다.

참전용사 등 보수단체는 김기종씨를 사형에 처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김기종씨를 살인미수혐의로 구속한 데 이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그러자 지나친 반응 아니냐는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고 NYT는 지적했다. ‘아이 러브 아메리카’라는 구호가 넘치자 이는 또다른 사대주의 아니냐는 것. 심지어 일부에서 일고 있는 숭미주의(崇美主義)를 임진왜란 당시 일본을 물리친 중국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에 비유하기도 했다. 야당인 새정치연합은 정부가 이 사건을 빌미로 ‘종북사냥’을 벌이고 있다고 각을 세웠다.

리퍼트 대사의 피습사건 이후 한국의 여론이 이처럼 갈라지게 된 배경에는 미국을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이 한국사회에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게 NYT의 진단이다. 보수적인 한국인들은 미국을 한국전쟁 때 참전한 은인으로 생각하는 반면 진보적인 사람들은 미국이 남북분단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비판적이라는 것이다.

전석운 기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