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사 테러 이후] 검찰 “김기종, 국보법 위반 혐의 다각도 입증 필요”

입력 2015-03-09 20:28

경찰은 주한 미국대사 습격 사건의 피의자 김기종(55)씨 집에서 압수한 다수의 이적표현물을 놓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연결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단순히 이적표현물을 소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게 법원의 일관된 판례다. 이 때문에 수사 과정에서 경찰과 검찰은 국가보안법 적용여부를 두고 미묘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9일 “애초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할 당시 국가보안법 7조(찬양·고무) 위반 혐의를 적용하려 했다”고 밝혔다. 김씨의 과거 행적에서 ‘종북’ 활동이 드러나 국보법 위반 혐의점이 있을 것으로 미리 판단했다는 뜻이다.

반면 검찰은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검찰 내부에서는 “경찰이 조급해 하는 것 같다”는 말도 나온다. 검찰이 국보법 적용은 수사 경과를 지켜보면서 결정하자고 지휘하면서 지난 6일 김씨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에는 살인미수, 외국사절폭행 혐의 등만 담겼다.

검찰이 신중하게 나오는 배경에는 법원 판례가 있다. 법원은 이적표현물을 단순 소지했다는 이유로 무조건 처벌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적표현물을 갖게 된 동기와 목적 등이 ‘적(북한)을 이롭게 하는 데 있다’는 점이 입증돼야 비로소 찬양·고무죄가 성립될 수 있다.

2012년 대법원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홈페이지에 ‘조미대결 50년사’ 등 이적표현물을 올린 교사 김모씨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 등이 올린 일부 자료가 이적표현물임에는 틀림없었다. 다만 통일교육을 담당하던 김씨 등이 학문적 연구 등을 이유로 이 자료들을 소지했을 수 있기 때문에 이적 목적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는 학문적 연구나 오직 영리추구 또는 호기심에 의한 이적 목적물 소지 행위는 처벌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북한 대남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 사이트를 리트윗한 박정근씨도 이적 목적성이 없다는 이유로 지난해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에 따라 검찰은 이적표현물 소지 동기나 목적 입증이 실패할 경우 제기될 비난여론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 1996년 ‘남한사회 통일문화운동의 과제’라는 석사 논문을 썼던 김기종씨는 일찌감치 연구 목적으로 이적표현물들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검찰 송치 전에 ‘성과’를 내는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김씨의 살인미수 혐의와 국보법 위반 혐의를 투 트랙으로 조사 중이다. 이적성이 확인된 문서와 그동안 활동사항 등을 종합 검토해 국보법 적용 여부를 최종 결정한 뒤 늦어도 13일까지 김씨를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경찰은 이미 이적성이 의심된다며 일부 서적도 공개하고 나섰다. 윤명성 종로경찰서장은 “외부전문가 집단에 감정 의뢰한 결과 압수한 10여점에 대해 이적성이 있다고 통보 받았다”고 했다.

경찰은 김씨가 집회나 토론회 등에서 노골적으로 종북 성향을 드러내왔기 때문에 이적 목적성을 입증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 판단한다. 경찰은 김씨의 통화·문자내역과 계좌추적을 통해 자주 연락을 주고받고 지속적으로 후원한 이들을 파악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배후와 자금 후원 여부 등을 함께 들여다보는 것이다.

또한 경찰은 공조수사 중인 미국 연방수사국(FBI)으로부터 김씨의 페이스북과 트위터 계정 등에 대한 자료도 넘겨받아 분석하고 있다. FBI요원들도 속속 입국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5층에 FBI 사무실도 마련됐다.

정현수 황인호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