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온성도교회 성도들의 ‘용서’… 유가족 93% “테러범 용서했다”

입력 2015-03-09 16:32

주일이었던 2013년 9월 22일 낮 12시. 파키스탄 북서부 페샤와르의 온성도교회(All Saints Church) 성도들은 예배를 마치고 여느 때처럼 교회 뜰 여기저기서 차를 마시거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점심식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순간 “꽝, 꽝” 두 차례 폭음이 이어졌고, 교회 앞마당은 순식간에 전쟁터처럼 변했다. 현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자행한 자살폭탄테러였다.

당일에만 98명(태아 3명 포함)이 숨졌고, 이 중 교회 성도가 95명이었다. 또 30명 이상이 중상을 입는 등 140여명이 파편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졸지에 고아 18명, 한부모 자녀 35명이 생겼다. 남편을 잃은 과부도 16명이나 됐다. 131년 전통의 온성도교회는 깊은 고통과 슬픔, 상처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당시 한국에서 비보를 접한 정마태(62·파키스탄 포먼기독대 리더십개발) 교수는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그가 선교사 비자를 받아 파키스탄교회 교단의 페샤와르 교구를 통해 1993년부터 10년 간 평신도 제자교육을 맡으며 섬겼던 교회가 온성도교회였다.

그들을 돕는 일이 시급했다. 하지만 테러 위험이 상존하고 있는데다 종교간 갈등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모금 등 지원활동은 조심스럽게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인터서브코리아 대표를 수년간 지낸 그의 판단이었다. 온누리교회 NGO인 ‘더멋진세상’과 선교단체인 ‘아시아미션’ 등을 통해 총 1억6000만원 정도의 성금이 답지했다. ‘현지 성도들을 위로한다’ ‘성금을 투명·공정하게 배분한다’ ‘최대한 이번 사건의 진실을 밝힌다’ 등의 목표를 정한 정 교수는 사건 4개월 만인 지난해 초 아내 이은숙 사모와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현지 교회에 도착했다.

정 교수는 테러 피해자 125가정(339명)을 일일이 방문해 피해자 지원활동을 위한 대면 인터뷰를 가졌다. 질문은 대략 10개쯤으로 구성했다. 그 중에는 ‘당신은 그들(테러범)을 용서했습니까’라는 질문이 포함됐다.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정 교수는 깜짝 놀랐다. 응답자의 약 93%(어린이 제외)인 315명 정도가 “그렇다”고 답한 것. 부모와 배우자, 자녀와 친지, 이웃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범을 용서했다는 고백은 그에게 충격 이상으로 다가왔다.

사순절 셋째 주간에 접어든 9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정 교수를 만나 피해 성도들과의 인터뷰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봤다.

-인터뷰 때 ‘용서’와 관련된 질문을 넣은 이유가 궁금하다.

“피해자들을 위한 중·장기적인 영적·심리적 치료(치유)를 위해서는 당사자의 ‘용서’ 여부가 굉장히 중요하다. 용서를 한 피해자와 그렇지 않은 피해자에 대한 치료 접근법이 다르다. 그래서 이 어려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이 질문에 대한 그들의 답변 태도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정말 진심이 담긴 답변이었나.

“응답자들은 정작 이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내 질문에 담담하게 파키스탄 말(우르드어)로 “지, 하”(예, 선생님)라고 말하는 걸 보고 놀랐다. 그들은 고매한 신앙과 인격의 소유자들이 아니다. 오히려 거의 모두가 빈민층에 속한다. 저마다 인간적으로 연약한 구석이 많은, 그야말로 평범한 이들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자신들의 죄악성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 고백 같은 답변이었다.”

-90% 넘는 피해자들이 ‘용서했다’는 답변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나.

“많은 피해 성도들이 ‘(하나님)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소서’라고 얘기하더라. 심지어 ‘흠 없는 예수님조차 우리 죄를 용서하셨는데, 우리처럼 깨끗하지 못한 이들이 왜 용서하지 못하겠습니까’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당한 희생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진심 어린 용서라고 생각한다.”

-현지에서 40일간 인터뷰를 진행했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나와 아내, 현지인 목사와 함께 일본 스즈키사의 작은 구급차를 타고 가가호호 방문했다. 하루에 3~4가정씩, 가정 수로는 총 125가정이었다. 피해자들을 만나 함께 손을 잡고 울면서 기도했다. 피해자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가장 필요한 도움이 무엇인지도 꼼꼼하게 파악했다. 숙식은 안전을 고려해 온성도교회에서 해결했다.”

-10년 정도 섬긴 교회다. 피해자 중에 잘 아는 성도들도 있었을 텐데.

“2002년 함께 한국을 방문해 평신도 지도자 교육을 받은 무슬림학교 교사 출신의 성도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의 아내와 딸도 숨졌다. 10대 후반의 아들만 남았다.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또 다른 가정이 있는데, 약혼남만 빼고 부모와 약혼녀까지 다섯 식구가 모두 세상을 떠났다. 놀라운 건 그의 집 앞에 빈터가 있었는데, 얼마 전 호주의 한 교회 지원으로 그곳에 예배당이 세워졌다는 것이다.”

-현재 온성도교회 상황은 어떤가. 회복되고 있나.

“테러 위험 때문에 외부인이 현지에 들어가는 건 쉽지 않다. 현지 교회는 테러 전에 400명 정도 출석했는데, 지금은 200~300명 선으로 줄었다고 들었다. 특히 테러 현장을 목격한 어린이들은 여전히 공포감이 커서 교회 가기를 꺼린다고 한다. 한 달 전쯤에는 중상자였던 17세 여학생이 끝내 하늘나라로 떠났지만 견디고 있다. 한국에서는 현지인 목회자 등을 통해 피해 성도들을 지금도 돕고 있다.”

-온성도교회 성도들의 ‘용서’가 한국교회에 어떤 메시지로 전해지기를 바라나.

“용서가 없으면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용서가 없으면 소망이 없다. 교회와 연합기관과 선교지 곳곳에서 분쟁과 갈등, 대립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온성도교회들이 보여준 용서의 마음을 깊이 묵상했으면 좋겠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