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KBS 장애인 앵커로 최종 선발된 지체장애 1급 임세은(32)씨는 밝고 꾸밈이 없었다. 그의 얼굴에서 장애인의 그림자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뮤지컬 배우로도 활동 중인 임씨는 4일 오후 서울 강서구 등촌동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 사무실에서 가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장애를 극복하고 앵커가 되기까지의 절절한 사연을 담담하게 털어놨다.
그는 “취업이라는 꿈같은 일이 일어났다.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며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도와주신 분들이 생각난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임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골프를 시작해 대학 1학년 때 티칭 프로 자격까지 따는 등 운동에 소질을 보였다. 그러나 2007년 대학 4학년 겨울방학 때 세미프로 자격 획득을 앞두고 떠난 필리핀 전지훈련 도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가슴 밑으로 신경이 마비되는 ‘경수 손상’을 입었다. 관절에 뼈가 자라고 근육에 석회가 끼는 합병증까지 생겼다.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이 됐습니다.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모태신앙으로 자랐는데 왜 내게 이런 일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좌절하고 두려웠다. 하지만 교인들과 가족이 자신을 위해 정성껏 병간호하며 기도하는 것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성경을 읽으며 화를 다스렸다. 빨리 낫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다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3년여 재활훈련을 받은 그는 기적적으로 팔의 근력이 상당부분 회복됐다. 지금은 자가운전이 가능할 정도다.
하지만 장애인이 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라디오와 TV, 신문 등을 통해 장애를 극복한 이들의 이야기를 알게 됐다. 장애를 딛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가수 강원래, 시각장애 방송인 심준구 목사, 팔다리가 없는 낙 부이치치, 뼈가 부서지는 희귀병을 안고 태어난 숀 스티븐슨, 교통사고로 얼굴에 화상을 입은 이지선씨 등. 비록 장애가 있지만 누군가에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있는 이들이 존경스러웠다.
2012년 그는 신문에서 장애인을 위해 아나운서 교육을 해준다는 기사를 읽었다.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도전해야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 신촌봄온아카데미와 한국척수장애인협회 등에서 무료로 스피치 교육을 받았다. 이듬해 한국장애인예술단 단원으로 합격해 꾸준히 발음교정과 호흡법, 연기교육을 받았다.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다룬 창작뮤지컬 ‘그 여자가 이사왔다’에 남자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각종행사에서 사회를 보며 떨지 않는 훈련을 계속했다.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 대표 배은주 집사는 “임세은씨는 교육이 진행되는 동안 한 번도 결석하지 않아 2013년 가장 우수한 단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임씨의 재활 스토리를 담은 뮤지컬 제작도 계획 중이라고 배 대표는 귀띔했다.
임씨는 “하나하나 배우며 발전하는 성실한 앵커로 성장해 세상에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임씨는 앞으로 뉴스프로그램 진행과 관련한 실무교육을 받은 뒤 KBS 1TV ‘KBS 뉴스 12’에서 ‘생활뉴스’를 진행할 예정이다.
출석하는 경기도 의왕 경기중앙교회(이춘복 목사)에서는 성가대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일예배 시간에 목소리를 녹음해 스크린을 통해 광고 안내도 하고 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로 시작하는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이 좋아하는 성경구절이다.
그는 “장애는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라며 “하나님께 의지해 힘들어도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제게 어떻게 웃음을 잃지 않느냐고 묻곤 하죠. 저는 살면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어요. ‘세상 세(世)’ ‘은혜 은(恩)’자인 제 이름처럼 세상에 은혜를 끼치며 살려고 노력하다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절로 찾아온다는 것을요.”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골프선수서 전신마비 장애인으로… ‘KBS 장애인 앵커’ 임세은씨의 절절한 간증
입력 2015-03-05 15:44 수정 2015-03-05 2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