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후폭풍] 당초 공직사회 투명화 목적이 민간 영역 포함시키는 등 변질

입력 2015-03-04 20:21

국회에서 통과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당초 ‘민간 영역’에 메스를 대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 공직자를 규제 대상으로 삼았던 김영란법은 국회 심의 과정에서 사립학교 교사와 언론인 등을 법 적용 대상으로 포함시켰다.

김영란법은 2011년 6월 처음 제안된 후 지지부진하다가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을 위한 핵심 입법 과제로 탄력을 받게 됐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제안한 원안 취지는 공직자들이 위법 소지를 갖는 금품이나 청탁을 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2011년 6월 당시 김 권익위원장은 국무회의에서 ‘청렴 확산’ 방안으로 ‘공직자의 청탁수수 및 사익추구 금지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벤츠 여검사’ 사건 등 검사 비리 사건이 계기가 됐다.

김영란법 골자는 직무 관련성과 상관없이 100만원 이상 금품을 받은 공직자는 모두 형사처벌하도록 한 것이었다. 이때만 해도 김영란법은 현행법으로 처벌 불가한 청탁성 골프·식사 대접 등을 막으려는 공직사회 투명화 방안으로 여겨졌다.

정부는 권익위에서 낸 법안을 검토해 2013년 8월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안은 공직자와 공직자 가족이 직무 관련성을 갖는 사람에게서 금품을 받았을 경우 대가성을 따지지 않고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다. ‘과잉금지원칙’에 반한다는 이유로 ‘직무 관련성과 상관없이’라는 부분을 뺀 것이다.

김영란법 소관 상임위인 국회 정무위원회에선 “법 적용 대상이 포괄적”이라는 문제 제기가 잇따랐고 직무 관련성을 규정하기도 애매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영란법 제정은 이대로 흐지부지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하지만 김영란법은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세월호 후속 법안’으로 또 다시 주목을 받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5월 19일 대국민 담화에서 공직사회 적폐를 해소할 것을 주문하면서 김영란법에 대해 “국회의 조속한 통과를 부탁드린다”고 강조한 것이다.

정무위에서는 법안 심사에 속도를 냈지만 법 적용 대상이 지나치게 넓고 부정 청탁 범위를 규정하기 어렵다는 문제에 부닥쳤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 등 일각에선 우려를 표하기도 했지만 정무위는 지난 1월 법 적용 대상을 사립학교 교사와 언론인 등으로 넓힌 안을 통과시켰다. 여론 압박을 이겨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정무위 안은 가족 범위만 공직자 등의 배우자로 축소했고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 부분은 논의를 뒤로 미뤘다. 이에 대해 이미 위헌 논란을 잘 알고 있었는데도 불완전한 입법을 강행했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정무위 새누리당 간사인 김용태 의원은 지난해 5월 기자회견을 자청해 법 적용대상이 광범위하다는 문제 등을 지적하면서 “‘공직사회를 깨끗하게 하자는데 왜 그러느냐’는 비판이 무서워서 반대를 못했다”면서 “참회한다”고 밝혔으나 이후 되레 법 적용 대상을 확대한 것이다.

또 정부안에 있던 법 적용 예외 대상은 ‘선출직 공직자·정당·시민단체 등이 공익적인 목적으로 공직자에게 법령·조례·규칙 등의 제정·개정·폐지 등을 요구하는 행위’로만 돼 있었다. 하지만 정무위 논의 과정에서 ‘공익적인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는 행위’도 규제할 수 없도록 하는 문구가 추가됐다. 정치인이나 시민단체 활동은 감시망을 피할 수 있게 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또 법사위는 지난 3일 사립학교 이사장 및 이사가 빠진 것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본회의 통과 직전 구겨넣기도 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