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 도매금으로 넘어간 언론자유

입력 2015-03-04 16:33

여야가 지난 3일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시킨 ‘김영란법’은 애초 생각지도 않았던 다른 과녁도 겨냥하게 됐다. ‘벤츠 여검사’ ‘스폰서 검사’를 처벌하기 설계됐던 이 법은 엉뚱하게도 그런 검사들의 비리를 보도해 알린 민간 언론사까지 한 묶음으로 조준하게 된 것이다. 국회가 나서면서부터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해 5월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국가 지원을 받는 KBS·EBS를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킬지 토론한다. ‘공공성’이라는 단어가 나오면서 비틀대기 시작한 논의는 한편의 블랙코미디를 방불케 한다.

“다 넣자. 종편이고 뭐고 전부. 인터넷 신문, 종이 신문도 넣고(새정치민주연합 강기정 의원)” “언론기관이 하는 부정청탁은 기사를 매개로 광고 달라고 해서 ‘너 안주면 기사로 조질 거야’라고 하는 거지요(같은 당 김기식 의원)” “언론까지 포함해서 다…(새누리당 김용태 의원)” 단 이틀간의 토론 만에 국민일보와 같은 민간 언론사 소속 기자들도 김영란법에 한해서만은 ‘공직자’ 대접을 받게 됐다.

이후 벌어질 문제는 불 보듯 뻔하다. 검찰·경찰은 마음만 막으면 ‘내사’ ‘수사’의 명목으로 비판 언론을 들볶을 수 있다. 안 그래도 자의적인 수사·기소권 남용으로 비판받는 사정기관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이것들(기자) 웃기는 놈들 아니야 이거…지들 아마 검·경에 불려 다니면 막 소리 지를 거야(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시절)” 이런 협박이 현실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언론사라고 부정부패의 성역은 될 수 없다. 기자들이라고 금품·향응 수수에 면죄부를 발급받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국회판 김영란법’이 씁쓸한 것은 헌법이 보장한 언론자유에 대해서는 눈꼽만큼의 고려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레기(기자+쓰레기)’가 밉다고 언론자유까지 함부로 도매금으로 내다 팔수는 없는 일이다.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신문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신문 중에 택하라면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후자를 택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2015년 한국 국회의 언론 자유 감수성은 200여년 전 미국 정치인 수준에도 못 미치는 모양이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