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김영란법 ‘괴물법’~시민단체는 왜 빠졌나

입력 2015-03-03 20:30 수정 2015-03-03 22:40
국회 본회의를 3일 통과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의 수수 금지법)이 입법취지와는 달리 형평성 및 위헌논란에 휩싸이고 ‘언론자유 침해’ 우려까지 제기되면서 공포도 되기 전에 벌써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한 위법의 경계가 애매해 이현령 비현령(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고리)라는 지적이 나와 자칫 검찰의 자의적 해석에 따라 기소가 가능한 검찰공화국 우려도 나온다.

또한 사실상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행정부와 정치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민사회단체와 변호사 등 공적기능을 하는 직역군마저 법 적용 대상에서 빠지면서 심각한 형평성 논란도 제기된다. 이미 시민단체 관계자가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시장과 군수 자리에 오르는 등 현실적 권력기관이 된 상황이고 정부의 예산지원까지 받는데 이들을 법 적용 대상에서 뺀 것은 입법의 진정성마저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선 법 충돌부분을 보면 배우자의 ‘불고지죄’ 조항은 형법 조항과 배치된다. 법안은 법 적용 대상에 가족 중 배우자만 남겨두되, 공직자가 배우자의 금품수수 사실을 인지했으면 배우자를 반드시 신고토록 했다. 그러나 형법은 죄를 지은 범인을 숨기거나 도피하게 한 사람이 범인의 친족이나 가족이면 범인은닉죄로 처벌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두 법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배우자가 금품을 받았을 경우 공직자를 처벌토록 한 조항도 헌법에서 금지한 ‘연좌죄’에 해당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정치권에서 ‘가족관계 파괴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법 적용 대상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로 대폭 축소했지만, 이 경우 형제자매나 자녀 등을 통한 ‘우회적 금품 로비’를 차단하려던 본래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주장도 있다.

형평성을 이유로 들며 공직자인 국립학교 교직원 뿐아니라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인 등 민간 영역까지 법 적용대상을 확대한 부분도 문제로 지적된다.

검사 출신인 새누리당 정미경 의원은 “공직자 설정 기준이 자의적이고 원칙이 없다. 결과적으로 김영란법에 이것저것 다 붙이면서 입법 취지와는 다른 ‘괴물’같은 법이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권성동 의원은 “사립학교 교원은 국공립학교 교원과 같은 교사라는 측면에서 별문제가 없지만 언론인은 별개 문제”라며 “공공성을 띤 사적 영역이 기자 말고 민간 검증, 감정 기관, 평가 기관도 많이 있는데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했다.

‘이중처벌’ 및 ‘반쪽 처벌’ 문제도 제기된다. 공직자가 금품을 수수하면 형법상 뇌물수수죄에도 해당되고 김영란법에 의해 형사처벌 또는 과태료 부과도 받게 돼 이중처벌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또 김영란법에는 금품을 받은 공직자는 처벌하도록 하고 있지만 금품을 제공한 사람을 처벌하는 규정은 없어 ‘반쪽처벌’이라는 지적도 있다.

금품수수와 달리 부정청탁의 개념과 행위 유형 등이 여전히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 경우 검찰이나 사법당국이 무조건 적발하고 보자는 식으로 권력을 남용하는 ‘검찰공화국’, ‘사법공화국’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국회 법사위는 본회의에 이 법안이 상정되기 직전까지 여러 쟁점들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으며 즉석에서 당초 여야 합의에서는 법적용 대상에서 빠졌던 사립학교 이사장과 이사를 급하게 포함시켰다. 한마디로 졸속처리다.

법 시행시기와 관련,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둬 20대 총선이 끝난 뒤인 내년 10월부터 발효토록 한 점은 19대 국회에서는 이 법을 적용하지 않으려는 숨은 의도가 작용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벌써 ‘법 개정’을 입에 올리고 있다.

여야가 국회의원의 민원 전달 행위나 시민단체 활동이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 것을 두고 뒤늦게 꼼수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정무위가 법안을 심사하면서 시민단체와 정치인의 ‘제재 예외 활동’을 폭넓게 인정하도록 수정한 때문이다.

당초 정부 원안에는 예외조항이 ‘선출직 공직자·정당·시민단체 등이 공익적인 목적으로 공직자에게 법령·조례·규칙 등의 제정·개정·폐지 등을 요구하는 행위’로만 규정돼 있다. 하지만 정무위 최종안에는 여기에 ‘공익적인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는 행위’도 제재할 수 없도록 문구가 추가됐다.

‘공익적 목적’과 ‘사익적 목적’의 경계선이 애매한데다 ‘고위 공직자의 부정비리 단죄’라는 입법취지와는 배치된다. 이 때문에 다른 영역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정치인이나 시민단체의 활동은 한층 느슨하게 적용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여야가 법안 시행일을 1년 6개월 뒤로 선정한 것을 두고도, 19대 국회의원들이 본인들의 임기 안에는 법의 적용을 받지 않으려 하는 것이라면서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시민단체의 활동이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여당은 물론 야당 내에서도 “시민단체가 실제로 정부에 압력을 넣고 부정청탁을 받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있는데도 적용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의견이 터져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이진복 의원은 “우리 당이 주장했던 시민단체 (적용대상) 포함 조항이 관철이 되지 않아 아쉽다. 사실 가장 큰 이권단체가 시민단체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같은 당 이우현 의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시민단체와 변호사를 적용대상에 포함해야 한다. 시민단체는 정부나 기업에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일도 많다”고 지적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인 이상민 법제사법위원장은 “김영란법 적용대상에 원칙이 없다. 변호사·의사·시민단체는 왜 뺐느냐”면서 최근 론스타 측에서 8억원이라는 거액의 뒷돈을 챙긴 혐의로 구속된 시민단체 대표의 사례를 들기도 했다.

시민단체를 법 적용 대상에서 뺀 정무위 측은 다른 견해를 내놓고 있다. 정무위 관계자는 “국민이 불편해하는 민원을 전달하는 것은 시민단체의 고유 업무”라고 반박했다. 정무위 간사인 김기식 의원도 “시민단체를 적용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은 법안소위 초기 단계부터 검토된 적이 일절 없다. 시민단체까지 제재한다면 지나치게 범위가 넓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시민단체의 힘과 역할을 감안하면 정무위의 이같은 주장은 현실과 다소 거리가 있다는 게 대다수 견해다. 더욱이 시민단체는 공적기능을 수행하면서도 정부 예산 지원을 받는 곳도 많기 때문이다.

과거 시민단체는 ‘약자 보호’라는 기능이 강했지만 지금은 시민단체 자체가 사실상 ‘강자’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많은 시민단체 출신들이 시장,군수 등 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에 진출했다. 일부이긴 하지만 이지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결국 의원들이 그만큼 본인들과 시민단체의 면책에 공을 들인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는 이제 우리사회의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집단이다. 힘을 가지고, 더욱이 세금지원을 받으면서도 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


김경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