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고 우울한 날 보는 일본 영화 '해피 해피 와이너리'

입력 2015-03-03 18:35
2012년 ‘해피 해피 브레드’로 소소한 행복을 선사한 일본 미시마 유키코 감독이 빵 대신 와인을 통해 치유의 메시지를 전한다. ‘해피 해피 와이너리’는 와인처럼 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영화다. 와인을 소재로 한 영화라고 해서 만화 ‘신의 물방울’처럼 와인 한 모금을 마시면 눈앞에 꽃밭이 펼쳐지는 등 화려한 와인의 향연이 벌어지는 것을 기대했다면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일본 메이지(明治) 시대 포도주 양조장이 만들어진 홋카이도(北海道)는 와인용 포도 산지로 유명한 지역이다. 그중 강설량이 많기로 손꼽히는 내륙 지역인 소라치(空知)는 소규모지만 개성적인 와이너리(포도주 양조장)가 많아 최근 주목받는 곳이다. 소라치는 암모나이트가 잔뜩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음악을 공부하겠다고 떠났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아오(오이즈미 요)는 아버지가 생전에 남긴 땅에 포도나무를 심고 와인 양조에 몰두한다. 아오가 고향을 떠나 있는 동안 아버지의 밀밭을 가꿔 온 것은 아오의 띠동갑 동생 로쿠(소메타니 쇼타)다.

각자 포도와 밀을 가꾸며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던 아오와 로쿠 형제 앞에 어느 날 정체불명의 여인 에리카(안도 유코)가 캠핑카를 몰고 등장해 포도밭 옆에 땅을 파기 시작한다. 아오는 에리카를 쫓아낼 궁리를 하지만 로쿠와 마을 사람들, 심지어 강아지 바베트마저 에리카의 매력에 빠져든다.

영화는 흙과 거기에 사는 식물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 가슴 속에 품은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을 담백하게 그려내며 일상에 지친 현대인의 상처까지 어루만진다. “맑은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한 방울 뺨에 떨어지더니 빗줄기가 쏟아지며 안 좋은 일만 생겼다”는 생각이 드는 날 감상하기 좋은 영화다.

영화의 원제인 ‘포도의 눈물’은 겨우내 눈 밑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다가 봄이 되면 눈 녹은 물을 듬뿍 빨아올리는 포도나무가 작은 가지 끝에서 떨어뜨리는 한 방울의 물을 가리킨다. 주인공 이름인 아오와 로쿠는 각각 파랑과 녹색을, 에리카는 황야에 피는 꽃을 뜻한다. 3월 12일 개봉. 전체관람가. 117분.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