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털고 지나간 집에는 항상 중국산 담배꽁초가 있었다. 현관 변기 부엌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흔적’을 남겼다. 서울 동부권과 서남권, 경기도 성남·안양 일대를 넘나들며 반지하방에 사는 중국인 일용직 노동자들의 집을 노렸다. 돈이 될만한 물건은 물론 검정콩 고춧가루 같은 식료품까지 집어갔다. 훔치러 들어간 빈집에서 달걀프라이를 해먹고 술도 마셨다. 수사망을 피해 꼭꼭 숨은 그는 이렇게 9년간 범행을 이어왔다.
경찰은 항상 현장에 남아 있던 흔적을 빗대 ‘중국 담배꽁초 절도사건’이라 이름 붙였다. 수도권 일대에서 ‘중국 담배꽁초’ 신고가 100여건이나 들어오자 경기경찰청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물론 일선 경찰서에서도 달려들었다. 하지만 진전이 없었다. 담배꽁초에서 나온 유전자(DNA)와 일치하는 전과자는 없었다. 서민 동네라 CCTV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
2년간 이 사건에 매달렸던 서울 광진경찰서 강력팀은 지난 12일 금천구 절도사건에서 바로 그 담배를 또 발견했다. 다만 꽁초가 아니라 입에 그냥 물고 있다 꺾어버린 담배였다. 이번엔 인근 차량 블랙박스에 범인 모습이 찍혔다. 경찰은 주변 차량 블랙박스와 CCTV 300여대를 분석해 그의 이동경로 35㎞를 파악했다. 그리고 23일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서 집 앞에서 범인 전모(52)씨를 검거했다. 2006년 7월 첫 범행 이후 9년 만이다.
전씨는 2급 청각장애인이었다. 풀빵장사를 하며 중국인 노동자의 생활 패턴을 알게 됐다고 한다. 지난해부터 꽁초 대신 안 피운 담배를 꺾어버린 건 금연 중이어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그의 특이한 행동에 대해 “일종의 범행 의식(儀式)”이라고 추정했다. 경찰은 114차례 1억2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상습절도)로 전씨를 구속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중국 담배꽁초 절도사건’ 10년 만에 해결
입력 2015-03-03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