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배우자의 신체적 불임을 이유로 혼인을 취소할 순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신체적 불임이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명시한 첫 대법원 판결이다.
2011년 1월 결혼한 A씨와 B씨는 아이가 생기지 않자 병원에서 불임검사를 받았다. 남편 A씨의 ‘무정자증’이 원인으로 나타났다. A씨의 염색체에 불임을 유발할 수 있는 선천적 이상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둘 다 아이를 원했던 만큼 갈등이 깊어졌다.
여기에다 불임검사 이후 B씨는 A씨가 어린 시절 비뇨기과 관련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남편을 더욱 믿지 못하게 됐다. 의사인 A씨가 자신이 불임임을 알면서도 속인 채 결혼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다툼은 잦아졌고, 말싸움 끝에 A씨는 폭력을 쓰기도 했다. 결국 A씨는 2012년 아내와 다툰 후 집을 나갔고 별거를 시작했다.
B씨는 남편을 상대로 혼인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사유에 해당하는 남편의 불임을 모른 채 결혼했고, 남편은 이를 알면서도 속였다고 주장했다.
1·2심 법원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B씨가 주장한 혼인취소 사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A씨의 불임 증세가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A씨가 불임 사실을 혼인 전에 알고 있었다고 볼 증거도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모욕적 언행을 일삼고 폭력을 행사한 A씨에게 혼인파탄 책임을 물어 이혼하라고 선고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혼인을 취소하라고 선고했다. B씨가 결혼할 당시에 A씨의 직업이나 경제적 능력뿐 아니라 2세에 대한 기대도 중요한 선택요소로 고려됐고, A씨의 불임 증상은 치료 등의 방법으로 개선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설령 임신에 성공한다 해도 2세에게까지 불임 증상이 유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도 근거가 됐다.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B씨는 A씨와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란 게 항소심의 결론이었다.
이 판단은 대법원에서 다시 뒤집혔다. 대법원은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를 엄격하게 해석했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불임 사실이 부부의 성생활에는 크게 문제되지 않을 수 있다”고 판단해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일 밝혔다. 신체적 불임 증상이 혼인취소의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명시한 첫 판례다. 불임 외에 A씨의 일부 성기능 장애는 약물치료와 전문가 도움으로 개선이 가능하다고 봤다.
대법원에서 혼인취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A씨 부부의 이혼 여부에 대해서만 심리할 가능성이 크다. B씨는 혼인취소 소송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를 대비해 이혼소송도 함께 청구했다. A씨도 B씨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걸어둔 상황이다.
혼인취소는 혼인의 성립요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신고된 혼인을 아예 취소시키는 것으로 혼인했던 사실은 그대로 남는 이혼과 약간 다르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대법 ‘단순 불임’ 이유만으로 혼인취소는 안돼… 구체적 첫 판시
입력 2015-03-03 1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