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소리-정종성 교수] 백성이 곧 하늘이다

입력 2015-03-03 15:19
연초부터 증세와 복지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세금폭탄’이라는 연말정산과 ‘꼼수 증세’라는 담뱃값 대폭 인상에 이어 건강보험료체계 조정실패, 근로소득세 징수목표 5000억원 초과 달성…. 그동안 복지예산 확보를 위한 증세는 없다고 외쳐온 정부가 실제로는 서민들의 ‘유리지갑’만 겨냥한 것 아니냐는 과세 형평성에 대한 불만이 급등한 것을 보여주는 소식들이다.

이런 불만의 원인은 ‘2014년 가계동향(통계청)’이 보여 주듯이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에게 더 높은 세율을 부과하는 역진세(degressive tax) 때문이다. 일례로 중간층인 3분위 가계(40~60%)의 지난해 월평균 경상조세지출액(근로소득세처럼 가계에 부과되는 직접세)은 18.8% 증가한 반면, 상위 20%인 5분위는 3.0% 늘어나는데 그쳤다. 3분위 가계가 무려 6.3배가량 더 많은 세금을 낸 것이다. 2013년에도 저소득층의 세금 증가율이 훨씬 높았는데, 이는 2012년까지만 해도 부유층인 5분위가 가장 높고 저소득층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누진세율이 갑자기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에 의해 ‘가이사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는 매우 곤란한 질문을 받았다(마 22:15~22). 질문 의도는 ‘백성들의 형편을 아랑곳하지 않고 부당한 과세를 일삼는 황제에게 메시아라고 불리는 당신도 한마디 해야 되지 않겠느냐’라는 거였다.

예수께서 가부(可否)간 대답을 하는 순간 반민족주의자로 매도되든지, 아니면 공무집행방해나 민중선동죄라는 함정에 빠지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고 지혜롭게 대답했다. 얼핏 들으면 세속 정부와 종교계가 고유의 조세권과 헌금제도를 상호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황제의 것’이란 없으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들 관점대로라면 예수님의 답변은 불필요한 위험을 비껴가면서도 황제의 부당한 과세를 거부하며 부분적으로 질문자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었다. 당시 로마는 식민지 소작들로부터 소출의 최대 70~80%까지 거둬갈 정도로 약탈적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오늘날도 모든 것이 ‘하나님(하늘·백성)의 것’이라는 신념을 지닌 공직자가 있다면 권력자의 편협한 소신이나 특권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편파적인 정책에 맹종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증세·복지 논쟁의 본질은 권력의 사유화로 인한 국정난맥상 때문에 공직자들이 ‘진정한 주인인 백성(하늘)’보다 ‘주인이 아닌 황제’의 눈치만 살피며 비정상적인 정책을 남발한데 있다. 다시 말해 진보·보수의 시각차 때문이 아니라 권력의 공공성이 훼손되면서 ‘황제의 관심’과 ‘백성(하늘)의 관심’ 사이에 커다란 틈이 벌어지면서 생긴 논란이라는 것이다.

진정 국민과 하늘을 두려워한다면 조세의 소득재분배 기능이 망가진 요즘, 고소득층과 부자 기업들이 조세를 좀 더 많이 부담하도록 바로잡아야 한다. 현재 한국의 복지지출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인 21.6%(국민총생산 대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10.4%다. 28개국 가운데 꼴찌다.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의 경우, OECD 평균치의 4배(48.5%)나 된다. OECD가 한국 정부에 대해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의 복지지출 증가율을 유지토록 권고한 것은 더 이상 ‘경제 활성화를 통한 복지증진’이라는 환상을 깨야 한다는 얘기와 일맥상통한다. 사회안전망이 강화돼야 경제도 활성화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복지체제로 나아가기 위한 증세는 필요하다. 그러나 멀쩡한 강바닥을 파헤치느라 수십조원을 쏟아 부은 4대강 사업이나 검증 없이 수십조원의 해외자원사업으로 혈세를 낭비한 정부는 진정한 주인인 ‘백성(하늘)’의 눈을 속인 과오를 반성하고 신뢰를 찾아야 한다. 백성이 곧 하늘이다.

정종성 교수(백석대 기독교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