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야권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55) 피살 사건으로 러시아 정치가 또 한번 크게 후퇴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러시아 정치 엘리트들 간에 정적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제거하는 ‘암살 정치 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TY)는 1일(현지시간) “넴초프 살해 사건은 과거 소비에트 시절처럼 치명적인 폭력과 공포감을 주입해 반대자들을 없애버리는 문화가 도래하게끔 하는 피봇 포인트(Pivot point·전환점)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정치 역시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야권이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반정부 인사들의 활동폭도 커졌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런 인사들을 폭력으로 제압하는 시대가 다시 올 것이란 분석이다.
이는 그동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각 정치 세력 간에 ‘증오’를 심어온 결과이기도 하다. 러시아에서 망명한 정치범 출신인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는 “지난 1년 간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부터 제 정치세력들은 비판할 적(敵)을 찾는데 혈안이 돼 있었다”면서 “TV에서도 증오를 양산하는 프로그램들이 넘쳤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이번 사건은 또 다른 암살, 즉 ‘정치적 반대’를 암살하는데 성공한 측면도 있다. 러시아의 에너지부장관을 지낸 야권 인사인 블라디미르 밀로프는 “암살 사건은 ‘공포 주입’이 목적이었을 것”이라며 “공포정치 문화도 러시아의 오래된 잔재인데 그런 문화가 재연되게 됐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향후 야권이 제대로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등 정치적 의견 개진 활동도 크게 위축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2006년 독극물이 든 차를 마시고 숨진 전직 러시아 정보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의 부인인 마리나 리트비넨코는 영국 BBC 방송과 인터뷰에서 “살인으로 정적들을 침묵시키는 게 푸틴의 오래된 정적 길들이기 방식”이라고 꼬집었다. 그녀는 또 “누구든 반대 목소리를 내려고 시도하면 살해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한 방식”라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야권은 3일 넴초프의 장례식을 거행할 예정이어서 대규모 인파가 몰리며 반정부 시위가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러시아 '암살정치' 도래하나
입력 2015-03-02 1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