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선거의 여왕' 박근혜가 사라졌다...새누리당 의정보고서 전수조사

입력 2015-03-02 17:00

‘선거의 여왕’ 박근혜 대통령이 사라졌다.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올해 초 지역 주민들에게 돌린 의정보고서에서 박 대통령이 자취를 감췄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박근혜 지우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민심에 민감한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에서 박 대통령이 없는 의정보고서가 쏟아졌다. 박근혜정부 출범 전후 박 대통령이 의원들의 의정보고서 1면 표지 사진을 장식했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불통 논란 등으로 촉발된 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이 이 같은 현상의 근본 원인이라는데 이견은 없다. 박 대통령과의 관계를 강조해봤자 더 이상 표가 안 된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박근혜 지우기’ 현상이 가속화될 경우 당청 간의 ‘딴 살림’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국민일보는 새누리당 소속 지역구 국회의원 131명 중 올 초부터 2일까지 발간을 완료한 96명의 의정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했다. 이중 절반 이상인 52명(54.1%)의 의정보고서에서 박 대통령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단 한 장의 사진도 등장하지 않았다.

사진이 들어간 44명의 의정보고서에서도 박 대통령의 모습은 옹색하다. 대부분 박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책자 중간쯤 여러 장의 사진들 속에 함께 배치했다. 작정하고 살펴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들 만큼 구석에 있거나 사진 크기가 작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박 대통령과 단둘이 찍은 사진은 드물었고 박 대통령과 여러 인사들의 단체사진 형식이 많았다.

올해 의정보고서 표지에 박 대통령을 등장시킨 여당 의원은 주호영 김종태 이장우 의원과 여성가족부 장관인 김희정 의원 4명밖에 없다.

캐치프레이즈도 민심의 변화를 담듯 달라졌다. ‘박근혜 대통령을 만든 사람’ 등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한 제목은 보이지 않았다. 지역구를 위한 의정 활동 성과 등이 의정보고서를 메웠다. 충남 아산이 지역구인 이명수 의원은 지난해 12월 청와대 오찬에 참석해 “국정 전반에 걸쳐 쇄신이 필요하다”며 쓴소리를 했다는 내용을 박 대통령 사진과 함께 싣기도 했다.

수도권은 사정이 더 심했다. 새누리당 수도권 지역구 의원 43명 중 34명이 의정보고서를 발간했는데, 27명의 의원은 박 대통령의 사진을 싣지 않았다. 수도권 의원 박 대통령의 사진을 담은 의원은 김성태 강석훈 길정우 의원(이상 서울), 김학용 이현재 이우현 의원(이상 경기), 이학재 의원(인천) 7명에 불과했다. 강원 지역 의원도 5명 중 1명만 대통령의 사진을 의정보고서에 담았다. 친박(친박근혜) 핵심인 전남 순천·곡성의 이정현 의원의 의정보고서에도 박 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텃밭인 대구·경북(TK)은 아직도 ‘박근혜 의존도’가 높았다. 지역 의원 23명 중 19명(82.6%)이 박 대통령과 함께 했던 성과를 지역 주민에게 알렸다.

반면 김무성 대표의 사진은 절반 이상(51명·53.1%)의 의정보고서에 등장했다. 지난해 7월 당 대표에 오른 후 9개월 만에 이룬 ‘약진’이다. 김 대표가 수개월 째 여권 내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지키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특히 김 대표의 홈그라운드인 부산·경남(PK)의 경우 의정보고서를 발간한 지역 의원 24명 중 15명의 보고서에 김 대표의 모습이 실렸다.

새누리당의 친박 의원은 2일 “박 대통령의 인기가 높았던 지난 총선에서 여당 의원들이 계파를 초월해 어떻게든 박 대통령과 함께 사진 한 장을 찍으려고 발버둥쳤던 것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을 느낀다”면서 “박 대통령이 불통 논란을 극복하고 국정 스타일을 바꾸지 않으면 ‘박근혜 지우기’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경택 전웅빈 권지혜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