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총기난사] 범인, 수렵허가 기간에 맞춰 총기 출고… 완벽한 계획범죄였다

입력 2015-02-27 21:31

우발적 범행으로 보였던 경기도 화성 엽총 살해사건은 완벽한 계획범죄였다. 형 부부와 출동 경찰관을 사살한 피의자 전모(75)씨는 수렵 허가기간이 끝나는 시점을 맞춰 총기를 찾았다. 또 사건 직후 발견된 유서에는 “이날을 위해 모두 내가 만든 완벽한 범행이었다”고 적혀있었다.

“내일이면 수렵 허가 기간이 끝나니 경찰서에 총을 입고하겠소.” 27일 오전 8시25분 전씨는 형의 집으로부터 930m 떨어진 남양파출소에서 자신이 맡겼던 사냥용 엽총(12구경 이탈리아제) 1정을 찾았다. 이전에도 이 파출소에서만 5차례나 총기 입출고를 반복해 별다른 의심을 사지 않았다.

전씨는 형 부부가 살고 있는 2층짜리 단독주택으로 향했다. 목격자 A씨는 “오전 8시30분쯤 전씨가 집 앞에서 형수와 큰 소리로 싸우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형수 백모(84·여)씨의 등에는 흙이 묻어있었다. 전씨는 한 손에 엽총을 든 채 다리가 불편한 백씨를 부축해 집안으로 들어갔다.

오전 8시41분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전씨는 1층 안방 문 근처에서 형(86)을, 현관 앞에서 형수 백씨를 향해 차례로 총을 쐈다. 이들은 모두 우측 가슴에 총을 맞고 사망했다. 총성을 들은 며느리 성모(51)씨는 2층에서 아래로 뛰어내렸다. 9시34분 며느리는 “난리가 났다. 작은 아버지가 (시)부모님을 총으로 쐈다”며 112로 신고했다.

4분 뒤 이강석 남양파출소장(경감)과 이모 순경이 현장에 도착했다. 다른 사건으로 경찰관들이 출동한 탓에 직원이 없어 신임 순경과 함께 직접 나섰다. 2인1조로 출동 시 한 명은 총을 소지해야 하지만 총기를 소지한 경찰관이 모두 다른 사건으로 나간 상태였다. 이 소장과 이 순경은 권총이 아닌 테이저건(전기충격기)을 들었고, 급한 마음에 방검복(防劍服)도 입지 못했다.

이 소장은 안면이 있는 전씨를 설득하기 위해 집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전씨는 엽총을 쏘며 “들어오지 말라”고 소리쳤다. 이 소장은 테이저건을 든 채 현관을 열고 뛰어들었다. 하지만 전씨가 쏜 총에 왼쪽 쇄골 부근을 맞고 현장에서 쓰러져 사망했다. 이후 전씨는 자신의 가슴을 향해 방아쇠를 두 번 당겼다. 가슴과 우측 겨드랑이에 총알이 한발씩 관통하면서 즉사했다.

경찰은 “전씨가 피해자와 재산 문제로 오랜 기간 원한관계에 있다고 보고 정확한 범행동기를 수사 중에 있다”고 밝혔다. 전씨의 차량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세상 누구도 전혀 알 수 없고 눈치를 챈 사람도 상상도 할 수 없다”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합동감식이 6시간여에 걸쳐 이뤄지는 동안 유가족들은 10여m 떨어진 주차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시신이 수습되기만 애타게 기다렸다. 오후 3시40분쯤 4구의 시신이 하얀 천에 싸인 채 나왔다.

피의자 전씨의 형 부부는 지역 유지로 100억원대 자산가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남양동 택지개발 당시 보상금으로 70억원 안팎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최근 들어 전씨가 수시로 형을 찾아와 “돈을 좀 달라”고 요구하는 등 재산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며느리 성씨는 헬기로 수원 아주대병원에 이송됐다. 석해균 선장을 수술했던 이국종 아주대 권역외상센터장이 직접 헬기를 타고 왔다. 성씨는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 중이다.

화성=임지훈 양민철 강희청 기자 zeitgeis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