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간통죄가 폐지되면서 이혼소송에도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혼인파탄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법원의 ‘유책주의(有責主義)’ 판례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바람피운 사람이 간통죄로 처벌받지도 않고 오히려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겠다고 소송을 내는 ‘적반하장’ 이혼소송이 잇따를 수 있다는 우려도 높다.
유책주의는 1965년 이후 대법원이 취하고 있는 일관된 흐름이다. 혼인관계를 ‘권리와 의무의 관계’로 보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배우자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혼을 청구할 권리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배우자에 대한 성적(性的) 성실의무를 위배한 사람을 형사처벌하는 간통죄와 기본적으로 유사한 구조다. 그래서 헌재의 간통죄 위헌 결정이 민사상 유책주의 원칙과 상반되는 방향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헌재는 “혼인과 가정의 유지는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지와 애정에 맡겨야 한다”고 간통죄 위헌 결정문에서 밝혔다. 법무법인 지우의 이현곤 변호사는 27일 “기존의 권리·의무 관계로 보던 혼인관계를 당사자 간의 애정에 기초한 관계로 보는 인식이 더 많아졌다는 점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간통죄로 상대를 고소할 정도의 부부관계라면 이미 재결합하기 힘든 파탄상태에 이르렀다 볼 수 있다는 게 헌재 판단이었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유책주의의 반대편에 서 있는 ‘파탄주의(破綻主義)’와 맥락을 같이 한다. 간통을 처벌해서 보호할 수 있는 혼인관계가 이미 파탄 난 상황이라면 간통죄가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파탄주의는 이혼 여부를 결정할 때 책임소재를 따지지 않고 혼인관계를 지속해 나갈 수 있는지를 살핀다.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혼인관계를 지속시킬 이유가 없다는 논리다.
파탄주의를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됐다. 실례로 A씨는 유책주의 때문에 이혼소송에서 번번이 패소했다. 부모 환갑잔치와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을 만큼 사이가 멀어진 아내는 이혼을 반대했다. 법원은 평소 잦은 외박을 하는 등 혼인파탄에 대한 A씨의 책임이 더 크다며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는 지난 1월 상고했다. 대법원은 사안별로 파탄주의를 탄력적으로 수용하는 식의 판례 변경이 필요한지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급심에서는 이미 혼인관계의 파탄 상태가 고려된 판결이 종종 나오고 있다.
반면 파탄주의를 적극적으로 적용할 경우 극심한 부작용이 생긴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바람피운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는 아내를 내쫓는 ‘축출이혼’이 대표적이다. 이혼하면 경제적 약자가 될 가능성이 큰 여성에게는 유책주의가 양육비와 재산분할, 위자료 책정 등에서 유리하게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이명숙 회장은 “간통죄로 처벌도 못하고 강제로 이혼도 당해버린 배우자들은 어디에도 호소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간통죄 폐지후] 바람난 배우자의 ‘적반하장 이혼소송’ 길도 열리나
입력 2015-02-27 20: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