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역’ 종교편향 논란 원학 승려·박원순 시장, 과거엔 공직자 종교편향 결사반대

입력 2015-02-24 17:16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 공사현장. 봉은사 안내판이 붙은 역사. 강민석 선임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서울지하철 9호선 929정거장 명칭을 봉은사역으로 해 달라고 요구했던 봉은사 주지 원학 승려가 2008년 ‘공직자 종교편향’ 문제를 주도적으로 제기한 장본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박 시장도 ‘공직자 종교편향’을 비판해 왔지만 봉은사역 지정을 강행했을 뿐 아니라 서울시의 불교예산도 대폭 증액시켜 왔다.

◇공직자 종교편향 비판 최선봉에 섰던 봉은사 주지=원학 승려는 2008년 8월 서울시청에서 열린 ‘헌법파괴 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대회’의 최고 책임자로 대회를 총지휘했다. 대회에는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 진각종 등 불교종파에 속한 신도 20만명이 참석했다.

당시 원학 승려는 “사회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불교가 아니라 종교차별을 일삼는 공직사회”라면서 “공직자들에 의한 종교차별이 방치된다면 다종교의 한국사회는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2009년 한 행사에서 “공직자 종교편향을 금지하는 법률이 제정됐지만 여전히 종교편향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공직사회를 감시하고 국민화합을 이루는 데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5년 뒤 공수표가 됐다. 2014년 2월 9호선 역명 논의가 한창 진행될 때 역명 확정·고시권자인 서울시장을 찾아가 봉은사역명 제정을 요구했다. 봉은사와 지하철역을 잇는 200m 길이의 지하보도를 설치해 달라는 민원도 넣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원학 승려가 당시 박 시장에게 지하철역에서 봉은사까지 폭 10m, 길이 200m의 연결통로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면서 “서울시에서 공사비 부담을 요구하자 한 발 물러섰다”고 말했다.

원학 승려가 종교편향이 없도록 공직사회를 감시하겠다고 약속하고 뒤로는 불교와 사찰의 이익을 위해 서울시 등에 불합리한 요구를 한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불교계가 인정하는 ‘친불교’ 박원순 시장, 불교편향 정책 줄이어=불교계에서 ‘친(親)불교 성향의 시장’으로 평가받는 박 시장은 2009년 만해포럼에서 “1주일에 3시간씩 위빠사나 수행(남방불교의 수행법)을 하고 있다”면서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문화이자 삶”이라며 자신의 친불교적 종교관을 드러냈다.

이처럼 왜곡된 시각은 수십억원의 세금이 투입되는 서울시 문화정책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템플스테이다. 박 시장은 2011년 서울시장 후보 시절 “전통문화를 가장 잘 알릴 수 있는 체험문화가 템플스테이”라고 밝히며 종교색이 분명한 템플스테이를 민족·전통문화로 포장했다. 서울시는 박 시장 취임 후 템플스테이 사업에만 매년 5억~10억원씩 지원하고 있다.

박 시장은 또 당선 후 조계종 총무원장을 만나 “시민축제인 연등축제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도록 돕겠다” “조계사·인사동 거리 등을 발전시키면 좋겠다”고 밝혔는데 이들도 모두 현실화되고 있다. 서울시는 2011년부터 매년 연등축제에 5억~8억원씩 지원하고 있으며, 2022년까지 2600억~3500억원이 투입되는 조계사성역화사업도 추진 중이다. 다음 달에는 3억원을 투입해 서울국제불교박람회도 개최한다. 2012~2015년 4년 동안 서울시의 불교예산은 165억9580만원으로 개신교(1억5000만원)의 110배가 넘는다.

이는 공직자의 종교편향을 강도 높게 비판했던 박 시장의 태도와 모순된다. 박 시장은 2011년 10월 법보신문과 인터뷰에서 “개인적 신앙이 공적 영역에 작용하거나 종교 편향성을 낳는다면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모든 종교의 비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박명수 서울신대 교수는 “봉은사 주지는 서울시장에게 봉은사역명 제정을 요구해 관철시켰고, 서울시장은 특정종교에 편중된 행정·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면서 “종교편향 시비가 불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