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한 직원이 내게 말했다.
“어제 적성검사를 해 보았는데 제 성격이 내성적이라고 합니다. 직업으로는 창의적인 엔지니어나 발명가가 적합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너무 잘 맞추어서 깜짝 놀랐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래서 자신의 딸도 적성검사를 받게 했더니, 음악가를 비롯해 창의력이 돋보일 수 있는 직업이 적합하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신기한 적성검사가 회사 내 직원들의 업무 배치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점쟁이들이 생각났다. 운명론을 가지고 사주팔자를 보며, 정월 초면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점집을 생각해 보았다. 사람은 과연 주어진 운명이 있는 것일까? 정말 적성검사에서 나온 것들이 맞는다면, 점쟁이들의 운명론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앞으로는 유전자를 분석해서 점쟁이나 적성검사보다도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의 피나 머리카락을 가지고 그 사람의 건강이나 질병뿐만 아니라 수명까지도 분석하는 것이 기업의 인사 정책에 반영될 수 있다는 말도 있다. 다만 인권 문제가 있어 법률적으로 허용될 것 같지는 않다.
우리의 일생이 정해져 있다면 그것은 무엇을 뜻할까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내일을 알 수 있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희망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다면 과연 기독교적인 인생관은 무엇일까? 성경은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떠한 이야기를 해 줄까?
성경을 해석해 보면, 더욱 더 목적이 분명한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목적 하에 지어졌다. 각자가 하나님의 계획 하에 지어졌고 그 능력은 각 사람마다 다르게 주어졌다. 한 탤런트, 다섯 탤런트, 열 탤런트 등이 주어졌고 그 탤런트대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그 목적은 모두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기쁘게 하는 것이다. 그 목적에 인생의 길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성경은 내가 받은 능력대로, 하나님의 목적대로 쓰임을 받는 인생이 바른 길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내가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을 설립한 목적이 있다. 그리고 내가 이 목적대로 회사가 운영되길 바라는 것처럼, 하나님도 내가 하나님의 목적대로 쓰이기를 바라실 것이다. 내가 잘못된 길로 가면 징계로 교훈으로 또는 사랑으로 인도하고 계실 것이다.
나는 오늘 내 인생이 지음 받은 목적은 무엇인지, 내 탤런트는 무엇이며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제대로 그 길을 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도저히 알지 못하겠다.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맞는 길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른다는 것에 오히려 크게 놀랐다. 내가 쫓고 있는 이 성공의 길이 과연 창조주가 원하시는 것인지, 내 능력이 그분의 뜻대로 쓰이고 있는지도 또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모두 만족스럽지 않다. 내 욕심과 내 미래와 내 행복만을 구하고 복만 달라고 기도했지, 정말 내가 가야 할 길을 가게 해 달라고 간구한 적은 매우 적었음을 느낀다. 역시 나는 정말 미약한 존재임을 다시 깨달았다.
김종필 전 총리가 부인의 장례식장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정치를 오래 해 왔지만 지나고 보니 허업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고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일생을 살지 않으면 권력과 돈, 명예 등 모든 것이 끝에 와서는 허업이라는 결론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일생을 하나님의 목적대로 쓰임을 받는다면, 생을 마감할 때 “헛되고 헛되도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정말 행복하게 살았고 앞으로도 행복한 저 세상에서 더욱 행복하게 살겠다”고 고백할 것 같다. 지금이라도 깨달아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길에서 행복을 찾는 현명함을 찾아야겠다.
한국유나이트문화재단 이사장, 갈렙바이블아카데미 이사장
[강덕영 장로 칼럼-종교인과 신앙인 (110)] 목적대로 쓰임 받고
입력 2015-02-24 1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