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명으로 명예 살인’ 지휘자,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페북지기 초이스

입력 2015-02-23 14:23 수정 2015-02-23 20:56

하지도 않은 성희롱을 했다는 누명을 쓴 채 음악계를 떠나야 했던 비운의 지휘자 사연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습니다. 잘 나가던 지휘자가 하루아침에 추악한 성범죄자로 추락하며 일명 ‘명예살인’을 당했는데 과연 그의 명예는 회복될 수 있을까요? 23일 페북지기 초이스입니다.

사연의 주인공은 바로 구자범씨입니다.

1970년생 구자범씨의 약력은 화려합니다.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만하임국립음대 대학원 지휘과에서 공부한 그는 독일 다름슈타트 국립오페라극장 상임지휘자(2002년)와 독일 하노버 국립오페라극장 수석상임지휘자(2005년)를 거쳤습니다. 나이와 인종을 뛰어넘는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것이죠. 한국으로 돌아온 뒤 2009년 광주시립교향약단 상임지휘자를 역임했고 2011년 3월에는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예술단장 겸 상임지휘자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승승장구하던 구자범씨에게 2013년 봄 시련이 닥쳤습니다. 한 여성 단원이 구자범씨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더 황당한 일이 이어졌습니다. 포털사이트에 구자범 연관 검색어로 ‘구자범 변태’ ‘구자범 성희롱’이 떴고 일부 언론에서는 마치 구자범 성희롱이 사실인양 보도됐다고 하네요. 구자범씨는 논란 끝에 같은 해 5월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7월 부산일보사와의 인터뷰에서 “여성 단원이 (성희롱) 진정을 취하한 뒤 단원들 사이에 다툼이 빌어지는 것을 보다 못해 사표를 냈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문제의 그 여성은 왜 하지도 않은 성희롱을 진정했을까요?

인터넷에는 구자범씨가 단원들에게 연습을 많이 시켰기 때문이라는 글이 퍼지고 있습니다. 글에 따르면 구자범씨가 연습 시간을 늘리자 일부 단원들이 개별 레슨을 하지 못해 불만을 품었다고 합니다. 단원들 사이에서는 퇴근 이후 개별 레슨을 하며 짭짤한 돈을 벌었는데 연습 때문에 레슨을 하지 못해 불만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구자범씨가 지휘봉을 내려놓자 성희롱 진정이 취하됐습니다.

포털사이트에 구자범 연관검색어를 조작했던 단원들도 일부 처벌됐습니다. 중부일보의 2013년 12월23일자 기사에 따르면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구자범’과 특정 비속어를 반복적으로 입력해 연관검색어로 등록되도록 한 혐의(모욕)로 경기필하모닉 단원 A씨(당시 32·여)와 대학생 B씨(당시 22·여) 등 3명이 입건돼 검찰 수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함께 입건된 4명은 가담 정도가 가벼워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고 하네요.

구자범씨는 이 일로 지휘봉을 다시 잡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터넷 글에 따르면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조차 성희롱 이미지 때문에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는군요.

검색어 조작에 관여한 단원들에게는 벌금형이 부과됐습니다. 구자범씨는 언론 등을 상대로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고소했지만 검찰은 피고소인을 기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구자범씨는 부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모습을 보며 정말 답답해 울었다”면서 “그들을 용서하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미워하진 않습니다. 진심 어린 사과만 있다면 좋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구자범씨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자막팀에 4개월짜리 단기 스태프로 채용돼 자막 교정일을 봤다고 합니다.

자, 어떻습니까? 잘 나가던 지휘자가 성추행범으로 몰려 지휘봉을 내려놓고 자막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마저 일거리가 없다는군요. 성희롱을 당했다는 사람은 진정을 취하했고 지휘자를 음해하던 사람들도 처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한 번 추락한 그의 명예는 되살아나기 어려운 지경이 됐습니다. 정말 기가 막힌 일이네요.

네티즌들도 구자범씨의 사연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실상 같아 마음이 짠해집니다.”

“무고죄 형량이 너무 가벼워요.”

“그러니까 최종 판결 전까지 무죄로 봐줘야 합니다.”

“저런 분들 나락으로 떨어뜨린 건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부터 반성합시다.”

“비상식이 판치는 나라. 사람 한 명 생매장했네요.”

“한국에 남자로 태어난 게 죄.”

이 사연 보니 제가 다 답답합니다. 구자범씨는 지금 특별한 일 없이 지내고 계신다고도 하네요. 구자범씨와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언론에 워낙 당한 게 있어서 전화조차 받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구자범씨의 명예회복이 될 수 있도록 네티즌 여러분이 많이 도와주세요.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