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22일 권력구조 개편과 관련해 “대통령 단임제, 대통령 책임제 해서는 큰 일 못한다”고 말했다. 내각제 개헌론자인 김 전 총리는 아산병원에 마련된 부인 박영옥 여사의 빈소에 조문 온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를 만나 “내각책임제를 잘하면 17년도 (권력을 맡을 수 있다), 그러면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전 총리는 빈소를 찾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도 “5년 대통령 단임제를 하지만, 5년 동안 뭘 하느냐. 시간이 모자란다.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영국에서 데모하고 파업하는 것 12년 (재임)하고 고쳤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5년을 지탱하는 것, 별 대과 없이 지낸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위로를 드린다”고 덧붙였다.
김 전 총리는 또 자신이 국교정상화를 주도했던 한일관계가 최근 악화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선 “양국 지도자간 근본적으로 생각이 다르니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을 정도로 컨트롤 하면서 시간을 가져야 된다”며 “자꾸 이것저것 문제를 제기하고 사이좋게 지내자고 해봐야 안된다. 급할 필요 없다”고 밝혔다.
대북문제에 대해선 “우리는 피를 안 흘리고 통일하는 게 좋겠지만 여간해선 어려울 것”이라며 “지금같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시간을 끌면 된다. 평화 통일을 원한다면 시간을 끌며 기회를 봐야 하고, 서두를 필요 없다”는 견해를 보였다.
‘정치 9단’인 김 전 총리는 최근 설 인사 차 자신을 찾아온 이완구 국무총리에게 “박근혜 대통령께서 여성이기 때문에 생각하는 게 섬세하실 텐데, 입을 다물고 할 말이 있으면 조용히 가서 건의 드려라. 밖에 나와서 내가 이런 이야기를 대통령에게 했다고 자랑하지 말라고 했다”고 소개했다.
상가에는 여야를 넘어 초당적인 조문이 이어졌다. 김 전 총리는 이날 오전 10시40분쯤 빈소에 도착해 영정사진을 쳐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휠체어를 탄 김 전 총리는 빈소 옆 작은방에서 온종일 문상객을 일일이 맞았고 입관식을 지켜본 뒤 오후 9시20분쯤 귀가했다.
김 전 총리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게는 “(박 대통령을) 도와드리면 반대급부가 있을거요”라고 말했다. 그는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황우여 교육부총리 등 여권 인사들과 이어진 면담에서도 “박 대통령이 힘든 때이니 잘 보필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아주 걸음걸이에서부터 언사를 구사하는 태도를 내 열심히 들여다봅니다만 여유가 있어서 좋아요”라며 “대(大)여당의 지휘자니까 그런 여유가 있어야지”라고 덕담했고, 김 대표는 “총재님이 옛날에 총재하실 때 그때가 참 좋았다”고 화답했다.
심대평 대통령 직속 지방자치발전위원장,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 정진석 전 의원 등 충청권 인사들은 온종일 번갈아가며 김 전 총리 옆을 지켰다.
이한동 이홍구 전 국무총리, 김수한 전 국회의장, 조부영 전 국회부의장과 자민련 전 부총재로 한때 JP와 소원했던 김용환 전 의원, 상도동계인 김덕룡 국민동행 상임대표, 새정치연합 정대철 상임고문 등 원로 인사들도 빈소에 다녀갔다.
정치권에선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서청원 이인제 최고위원, 정몽준 전 대표, 이재오 정두언 주호영 김영우 의원, 성완종 전 의원, 황우여 사회부총리, 남경필 경기도지사, 이병기 국정원장,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 양승조 사무총장, 유인태 김영록 서영교 의원 등도 첫날 조문을 마쳤다.
김 전 총리는 이날 새누리당 이인제 최고위원이 “회고록을 정리하고 계신가”라고 묻자 “(회고록은) 안 써요. 내용을 바꿔서 대담록으로…”라며 “회고록 하면 전부 지가(자기가) 잘했다고 떠드는 게 회고록인데 잘한 게 뭐 있어. 오죽하면 내 비석에다 ‘90이 돼서 돌이켜보니 89년간 뭘 남겨놓았단 말인가. 한게 없지 않으냐. 허망하다'고 썼겠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1997년 DJP 연합으로 정권 창출을 함께 도모했던 새정치연합 박지원 의원은 트위터에 “병환 중이시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문안 한 번 가지 못했음을 용서해 주시기 바란다”라고 적었다.
고인이 박정희 전 대통령 친형인 박상희씨의 장녀이자 박 대통령과 사촌지간인 까닭에 박 대통령의 동생인 근령, 지만 씨도 빈소를 찾았다. 지만씨가 부인 서향희 변호사에 대해 “집사람은 배가 산만해가지고요. 쌍둥이를 임신해가지고, 숨이차가지고 다니질 못합니다”라고 하자, 김 전 총리는 “급했구먼”이라고 농담을 했다.
박 대통령과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 정의화 국회의장,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 등은 조화를 보내 애도를 표했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
김종필 "대통령 단임제로 큰일 못해"…상가에 초당적 조문행렬
입력 2015-02-22 2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