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해 기억을 잃은 채 성관계를 했다고 해도 의식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면 성폭행으로 볼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A씨는 지난해 1월 친구와 소주 6병을 나눠 마시고 술에 취해 정신을 잃었다. 몇 시간 만에 깨어난 A씨는 처음 보는 남성 B씨와 모텔에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미 두 사람은 한 차례 성관계를 한 상태였고 B씨가 재차 관계를 시도했지만 A씨는 이를 거부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A씨는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성폭행을 당했고 한 차례 더 강간을 당할 뻔했다며 B씨를 고소했다.
B씨는 합의에 따른 것이라고 맞섰지만 검찰은 준강간과 강간미수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 사실을 인정해 B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달 30일 B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만취해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주장만으로 A씨가 의사능력이 없었거나 저항이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술집을 나온 A씨가 B씨와 함께 걸어가고 스스로 모텔 방으로 들어가는 CCTV 영상 등 객관적인 증거를 미뤄 성관계 당시 피해자에게 의식이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재판부는 김씨가 술 때문에 의식을 갖고 행동했으면서도 나중에 기억하지 못하는 일시적 기억상실, 이른바 ‘블랙아웃’에 빠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은 성범죄를 당했다는 여성의 주장이 있다고 해도 상대방과 진술이 엇갈린다면 당시 정황과 증거를 엄격히 분석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경우 그동안 애매해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준강간죄의 판단 기준이 한층 명확해질 전망이다.
김태희 선임기자 thkim@kmib.co.kr
“만취 성관계, 의식 있었다면 성폭행 아니다”
입력 2015-02-22 1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