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기업 탈세 비리 폭로… 영웅 될뻔했다가 사기범 전락 '내부고발자'

입력 2015-02-22 13:57 수정 2015-02-22 15:09

국내 굴지의 담배기업 내부 비리 폭로로 영웅이 될 뻔 했다가 사기범으로 전락한 한 내부 고발자가 네티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국내 담배업계 1위 KT&G의 탈세 비리를 알게 된 이 내부 고발자는 관계 당국에 곧바로 고발하지 않고 직접 기업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려다 결국 철창 신세를 지게 됐다.

1994년 KT&G에 입사해 15년 이상 근무하다 회사 상사와 잦은 충돌 등을 이유로 2011년 9월 회사를 그만 둔 A(45)씨는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되자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A씨는 자신이 몸담았던 ‘친정’의 비리를 무기로 회사를 협박해 돈을 뜯어야겠다고 작정했다. A씨는 KT&G 재직할 때 재무실 산하 세무부에서 과장으로 근무하며 회사의 회계 업무 전반을 도맡았기 때문에 회사가 탈루한 세금 규모를 비교적 상세히 알고 있었다.

A씨는 퇴직 후 한 달만인 2011년 10월 회사 인터넷 홈페이지 내 신문고에 “세무비리를 국세청과 언론사에 제보하겠다”고 협박 글을 올렸다.
A씨 협박에 KT&G 사장은 상무급인 재무실장 B(55)씨를 불러 "퇴직 직원 관리를 제대로 못했다"며 호되게 질책했다. 사장의 질책에 놀란 B씨는 “이러다가 회사에서 잘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회사 내 다른 직원과 함께 A씨를 만나 협상을 벌였다.

결국 B씨는 세무 비리를 외부에 알리지 않는 대가로 A씨에게 2011년 12월과 2012년 12월 2차례에 걸쳐 5억원을 건넸다. 하지만 이 둘이 당초 합의한 금액은 10억원이었고, B씨가 나머지 절반인 5억원을 주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자 결국 A씨는 국세청에 KT&G 세금 탈루 비리를 제보했다.

국세청은 2013년 3월 KT&G에 대한 기획(특별) 세무조사에 착수했고, 이로 인해 KT&G는 법인세 256억원과 부가가치세 192억원 등 448억원의 ‘추징금 폭탄’을 맞았다.

A씨는 내부 비리를 세무당국에 제보해 탈루된 세금을 거둬들이는 데 일조했지만, KT&G를 상대로 협박해 돈을 뜯은 사실이 검찰 수사 결과 뒤늦게 드러났다. 인천지검 외사부(이진동 부장검사)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공갈 혐의로 A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22일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피의자는 국세청에 비리를 제보한 대가로 포상금을 신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아직 지급되지 않았지만 처음부터 협박이 아니라 정상적인 방법으로 내부 비리를 알렸다면 재판에 넘겨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정식으로 했으면 영웅이 될 터인데, 사기꾼으로 전락했구먼” “내부 고발자의 고발 의도가 뭔지 짚어봐야겠지. 사적 욕심이 컸다면 포상은 안 주더라도 처벌하면 안 된다. 이러면 누가 비리를 고발하겠냐?”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 네티즌은 “현행 포상금 제도에 따르면 탈세 제보로 거둬들인 추징금의 10%를 제보자에게 포상하게 돼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경우 포상액만 44억이다. 그깟 5억 받은 거, 피해 변상해 버려도 39억이 남는 장사다. 국세청은 내부고발자한테 법적 포상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KT&G 측은 “2013년 세무조사는 사장 연임 과정에서 투서가 남발해 회사가 국세청에 요청해 진행된 것이다. 추징금도 세법 해석 차이에 따른 것인 만큼, 이에 불복해 이의를 제기해 놓은 상태”라고 밝혔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