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공항에서 멀지 않은 게스트하우스인 ‘타오하우스’ 2층 테라스에서는 햇빛이 좋지 않은 날에도 남쪽으로 한라산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선 듯한 한라산을 보다 문득 뒤로 돌아서면, 북쪽으로는 남해가 망망하다. 절경들 틈에 둘러싸인 타오하우스 1층에서, 머리를 길러 뒤로 질끈 묶은 주인장 서종환(46)씨가 커피를 내리며 말한다. “아내는 산이 보여야 한다 했고, 저는 바닷가를 고집했지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산과 바다의 소실점으로 있는 타오하우스는, 그렇게 부부의 절충안인 셈이다.
서씨는 서울에서 건축설계사로 살았다. 2012년 어느날 그악스러운 도시에 환멸을 느껴 제주행을 결심했다. 건축을 꿈이 아닌 일로 직면하는 삶에는 예술 대신 야근만 있었다. 너도나도 8학군을 찾는 자녀의 교육환경에 대한 회의, 도시의 생활에 지쳐가는 아내, 모두가 그를 제주에 가라 했다. 제주는 다행히 아내의 고향이었다. “미루지 않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 지 이틀 만에 그는 건축설계사 사무소에 사표를 던졌고, 아내와 아들부터 제주로 보냈다.
그는 말끝마다 “제주도는 넓고 깊다”고 했다. 열 달 동안 제주도 해안도로를 따라 풍광을 살피며 가족이 머무를 땅과 집을 샅샅이 탐색한 결과다. 조금만 마음에 든다 싶으면 어김없이 숨은 임자가 있는 땅이었다. 김녕리에서 성산으로, 세화리에서 중문으로, 다시 모슬포에서 애월로… 산고의 고통에 비견할 만한 열 달 동안 240km 해안을 한바퀴 돈 뒤, 그는 제주공항 근처의 한 집으로 결국 수렴했다. 한라산과 남해가 동시에 보였고, 제주도민들은 “그래도 제주시 안에 있어야 사는 게 편하다”고 조언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유진 오닐의 집필실 이름을 따 집의 이름을 지었다. 대공황 시대를 돌파한 문인은 “내 인생의 마지막 집이며 정착할 마지막 항구”라고 타오하우스를 찬사했었다. 제주도에 정착해 도예를 펼쳐온 서씨, 출판사 대표로 일하며 바른 먹거리를 고민하는 서씨의 부인에게 딱 맞는 집의 이름이었다. 서씨는 “‘타오’는 ‘도(道)’라는 뜻도 있지만, 현실과 문학의 세계를 넘나든 유진 오닐의 집필실처럼 예술적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실제로 타오하우스에 들어선 방문객들을 압도하는 것은 공간 곳곳을 아껴 쌓인 책들이다. 테라스를 빼고 스무 평 남짓한 거실 공간에는 미학과 예술, 문학에 대한 책들이 가득하다. 1층에서 2층으로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만한 나무계단도 책꽂이처럼 활용했다. 그렇다고 이론만 가득하지 않고 실재(實在)도 있다는 듯, 책이 있는 주변에는 서씨가 직접 빚은 도기와 캘리그라피, 스케치 등이 제자리를 찾고 있다. 크로체 미학과 서양철학사가 서가에 꽂힌 가운데, 그 옆 벽장 위에는 서씨와 서씨의 아들(13)이 빚은 찻잔이 올라 있는 식이다. 1층과 2층에 모두 있는 널찍한 테라스에도, 서씨가 빚은 커다란 항아리가 놓여 있다. 나이가 든 뒤 시작한 솜씨 치고는 문외한의 눈에도 퍽 훌륭해 보인다.
이 집을 게스트하우스로 만드는 것도 서씨의 오랜 꿈이었다. 그는 북촌 한옥마을에 게스트하우스들이 시범사업으로 생겨날 때에도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싶었다고 한다. 마지막 순간에 용기를 내진 못했지만, 그때 서씨의 말을 주의깊게 들은 한 후배는 현재 한옥을 세 채 사들일 정도로 게스트하우스로 크게 성공했다. 타오하우스는 말하자면 미련을 해결하는 집이기도 한 셈이다.
이 게스트하우스의 대원칙은 주인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는 것이다. 도예와 출판을 하는 부부의 삶을 관류하는 것은 예술이다. 주인의 색이 확고하니 방문객도 달라진다는 것이 서씨의 고찰이다. ‘작가의 방’ ‘디자이너의 방’ 등으로 명명된 1층과 2층의 방에는 여느 숙박시설에 있을 TV나 컴퓨터 대신 스케치북과 갖은 필기구가 놓여 있다. 집안에 구석구석 스며든 고아한 예술혼 때문인지, 이곳을 다녀간 이들도 저마다 예술가가 된다. 화가보다 훌륭한 뎃셍 솜씨를 뽐낸 이도 있고, 숫제 시화전을 펼치고 간 이도 있다. 지난달에 타오하우스 ‘디자이너의 방’에 머문 한 이는 53세 어머니와 함께 다녀간다며 어머니와 자신의 얼굴을 스케치북에 그려 넣었다. 서씨는 원래 아이들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빈 종이를 방 안에 두었는데, 이제는 방문객이 떠난 뒤 매번 감탄한다고 한다. 애초 공연과 전시를 업으로 하는 이들이 입소문을 듣고 기왕이면 타오하우스를 찾는 영향도 있다. 그는 “나중에 방명록 전(展)을 열어봐도 훌륭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천원짜리 해물라면을 주문하면 제주에서만 난다는 ‘딱새우’ 두 마리가 들어간 소담한 한 그릇이 나온다. 서씨는 방문객이 라면을 다 먹을 때를 기다려 새우살을 식혀 꺼내는 방법까지 설명해준다. ‘도’를 지키는 게스트하우스다 보니 방문객들은 야식이 고프더라도 열한 시가 되기 전에 주문을 끝낸다. 서씨가 직접 내리는 핸드드립 커피의 맛은 남해의 바람과 더불어 풍요롭다. 서씨는 수시로 커피를 내 주며 “진하면 말씀하시라”고 한다. 여느 게스트하우스와 달리 주인과 손님의 거리가 가깝다. 서씨는 “손님들을 대접한다는 생각, 그것이 게스트하우스의 출발이었다”고 말했다. 매일 아침식사를 차려 내는 것, 손님에게 설거지를 시키지 않는 것 역시 타오하우스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지난 19일 설날 아침에도 타오하우스에는 제주도를 찾은 관광객이 몇 있었다. 서씨 부부는 시장에 가서 직접 한우를 끊어와 떡국을 끓였다고 한다. 타오하우스의 아침상은 늘 한식으로 차려지는데, 여행지의 음식에 지친 이들에게 반응이 특히 좋다. 빵이 나오는 법은 없고, 언제나 ‘슬로 푸드’다. 불교미술을 전공한 서씨의 아내가 만든 음식은 템플스테이를 떠올릴 만큼 정갈하다. 흔히 제주에서 따지는 횟감이나 흑돈이 없어도 밥이 달다. ‘대숲바람’ 출판사에서 일하는 서씨의 아내는 제주음식을 주제로 로컬푸드를 연구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타오하우스에는 풍경과 건축, 도예, 문학과 음식이 버무려져 있다. 서씨는 평소 마음에 드는 갤러리나 도서관을 발견하면 그곳에서 잠들고 싶었다고 한다. 보면 볼수록 신비로운 ‘넓고 깊은’ 제주에서, 그는 요즘은 ‘혼자 걷기 좋은 길’을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혹자들은 타오하우스를 떠나며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내가 이런 집을 가지고 있었다면, 절대 손님들에게 공개하지 않았을 겁니다.” 꾸미고 칠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삶을 내놓은 게스트하우스에 방문객들은 부담에 가까운 마음을 느낄 정도다. 관광을 하러 제주도에 왔지만 오히려 게스트하우스 안에 머물며 한참 도자기며 책들을 쳐다봐야 했던 이유다.
제주=이경원 기자
[설날 제주 기행] 산과 바다의 소실점 타오하우스
입력 2015-02-20 16: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