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살 꼬맹이가 스물다섯살의 어엿한 숙녀가 됐지만 나는 여전히 열네살의 언니를 언니라고 부른다.”
설 연휴 첫날인 18일 대구그랜드호텔에서 192명의 사망자를 낸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12주년 추모식이 유족과 시민 2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사고 후 12년이 흘렀지만 유족들의 아픔과 그리움은 그대로였다. 참사로 당시 14살이던 언니를 잃은 배한진(25·여)씨는 추모식에서 ‘열네살 배한솔 언니에게 두 살 어린 동생 한진이가 보내는 마음’이라는 제목의 편지를 낭독했다. 편지에는 배씨를 비롯한 유족들이 느꼈던 지난 12년의 동안의 아픔이 그대로 묻어났다.
배씨는 “머지않아 나는 보통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결혼을 하고,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고, 또 할머니가 되겠지. 그래도 나는 열네살의 언니를 우리 언니라고, 예쁜 우리 언니라고 말할거야. 언니가 없는데도 시간은 변함없이 흘러가고, 엄마 아빠의 주름이 늘어나고, 흰 머리가 더 하얗게 세어가는 동안 참 많은 것이 변했어. 나중에 세월이 더 많이 흘러 우리가 다시 만나면 변하지 않은 것은 언니밖에 없다며 장난스레 웃을지도 모르겠다”라고 편지를 낭독했다.
또 “일년, 이년이 지나가면 그렇게 아픔이 조금씩 무뎌질 거라고 생각했어. 그것이 시간의 역할이고 그렇기 때문에 덜 절망하고, 덜 아파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고 더 짙어지는 것은 그리움이더라. 많이 보고 싶다 언니야. 나에게도 또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다른 사람에게도 지금까지 충분히 아팠던 12년을 보내며 앞으로의 시간은 조금 덜 아픈 시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라며 언니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배씨가 편지를 읽는 동안 유족들은 하나둘씩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함께 온 아이를 꼭 껴안으며 아픈 마음을 달래는 유족도 있었다.
올해 추모식은 그동안 성금 사용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었던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와 2·18대구지하철참사유족회 등 4개 유족·피해자 단체가 함께 모이고 10여년 만에 대구시장이 행사장을 찾아 추도사를 낭독하는 등 의미 있는 자리였지만 설 명절 기간에 열린 탓에 이전과 다르게 간소하게 치러졌다.
사고 발생시각인 오전 9시53분쯤 사이렌 소리와 함께 묵념으로 행사가 시작됐으며, 추모 퍼포먼스와 종교의식, 추도사 낭독, 추모 공연, 헌화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이전까지 단상에 설치했던 희생자들의 위패 대신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나무에 걸어 만든 ‘생명의 나무’를 설치해 희생자들을 기억했다. 특히 이날 세월호 피해자 가족 협의회가 조전을 보내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유족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한편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는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 정차한 전동차에서 한 정신지체장애인이 방화를 해 발생했다. 이 사고로 343명(부상자 151명 포함)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대구=글·사진 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12주년] 스물다섯살 된 동생 “14살로 남은 언니에게…” 눈물의 추모 편지
입력 2015-02-18 1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