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 절차가 12일 우여곡절 끝에 미뤄졌지만 ‘언론사 외압’ 의혹 등으로 내상은 이미 깊은 상황이다. 이 후보자가 큰 상처를 안고 총리에 오르더라도 당초 여권의 기대대로 책임총리 역할을 할 가능성은 요원해졌다는 것이다. 비판 여론과 야당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당이 인준을 강행하는 모습을 연출한 만큼 내각을 힘 있게 이끌 추동력을 이미 잃어버렸다는 분석도 나왔다.
◇여권 기대 속 책임총리 약속했던 李=여권에서 이 후보자에 대한 기대는 컸다. 박근혜정부의 숙원 과제인 경제살리기와 공무원연금·공기업·규제 등 ‘3대 개혁’을 밀어붙이기 위한 힘 있는 총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의전·대독 총리’가 아닌 내각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갈 만한 책임총리로 이 후보자를 낙점했다는 것이다. 이 후보자가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지내면서 세월호 특별법이나 공무원연금 개혁 협상을 무리 없이 이끌었다는 평가 또한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이 후보자 총리 인준은 ‘인적쇄신’의 신호탄으로도 여겨졌다. 박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진 상황에서 이 후보자 총리 임명에 이은 개각을 통해 설 민심을 돌린다는 시나리오의 시작점이었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지난 8일 “이 후보자의 국회 인준 절차가 마무리된 다음 신임 총리의 제청을 받아 실시될 것”이라며 힘을 실어줬다.
이 후보자는 적극적으로 ‘책임총리상’을 구현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전날 청문회장에서 청와대가 인사권을 다 행사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총리를 그만둬야 한다. 총리를 그만두겠다”고 단언했다. 또 “헌법상 총리 권한을 정확하게 행사하고 야당과 소통하고 국민 말씀을 경청해 대통령에게 쓴소리도 하겠다”고도 했다.
이 후보자는 ‘증세 없는 복지’ 논란에 대해 무상 복지 규모를 조정하고 지방재정 확보를 위해 지방세 인상을 검토해야 한다는 뜻을 피력하기도 했다.
◇녹음 파일 내상으로 벌써부터 ‘반쪽총리’ 평가=무난하게 청문회 관문을 통과해 책임총리 역할을 행사할 수 있다는 관측은 돌발 변수에 여지없이 깨졌다. 이 후보자 음성 녹음 파일 공개가 결정타였다. 반대 여론이 가라앉지 않으면 책임총리는커녕 역으로 청와대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여권 관계자는 “총리로서 자격을 갖췄다고 보고 큰 기대를 했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 때문에 역할이 축소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가 지난달 27일 일간지 기자 4명과의 점심자리에서 언론사 간부에게 전화해 자신에 대한 의혹 제기를 못 하도록 막았고 언론사 인사에도 개입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 10일 이 자리에 있던 기자로부터 당시의 녹음 파일을 입수해 전격 공개하면서 파장은 일파만파 번져나갔다.
이 후보자는 녹음 파일에서 “언론인들, 내가 대학 총장도 만들어주고…”라고 ‘과시성 발언’을 했다. 또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안)’ 적용 대상에 언론인이 포함된 데 대해 지금까지 언론인을 배려해 법 통과를 막았지만 앞으로는 봐주지 않겠다는 식으로 으름장을 놨다.
이 후보자 본인과 차남의 병역 문제와 부동산 투기 의혹 등에다 녹음 파일 파문까지 겹쳐 ‘결정적 한 방’이 없어 보이던 야당은 파상 공세 모드로 전환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상처 난 이완구…책임총리 역할 해낼 수 있을까
입력 2015-02-12 1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