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6자회담 북한 측 수석대표인 리용호 외무성 부상이 최근 미국 전직 관리들과의 접촉에서 “미국이 쿠바, 이란과 대화하면서 왜 북한만 적대시하느냐”고 항변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지난달 18일부터 이틀간 싱가포르에서 리 부상과 접촉했던 조지프 디트라니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산하 비확산센터 소장은 10일(현지시간) 일부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나 리 부상의 이 같은 발언을 소개하고 “리 부상은 미국이 북한하고만 대화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리 부상은 이 자리에서 비핵화 문제는 언급하지 않은 채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중단만을 강조하면서 “(한미 군사훈련은)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노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디트라니 전 소장은 밝혔다. 리 부상이 거론한 훈련은 키 리졸브와 같은 대규모 훈련을 의미한다고 디트라니 전 소장은 풀이했다.
디트라니 전 소장은 “북한 측이 실현되기 어려운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하는 의도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며 “앞으로 성김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탐색적 대화'를 통해 서로의 요구 사항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대화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지난달 하순 한·중·일을 순방한 성김 대표에게 북한 관리들과 접촉할 것을 건의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성김 대표의 평양 방문이 무산된 데 대해 개인적 견해임을 전제로 “에볼라 사태에 따른 검역조치가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북·미간에 계속 대화가 없을 경우 북한이 핵능력 증강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상황에 따라 핵탄두 소형화를 목적으로 한 4차 핵실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아울러 디트라니 전 소장은 최근 싱가포르에 소재한 ‘아시아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리 부상이 한·미 합동 군사훈련 중단의 대가로 핵실험과 함께 핵탄두 소형화 노력도 중단하겠다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지금까지 군사훈련 중단의 대가로 핵실험을 중단할 수 있다는 입장만을 밝혀왔다.
그는 또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의 일환으로 소니픽처스 해킹 사건과 인권문제를 앞세워 유엔에서 북한을 비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미국 측 참석자들은 “북한의 한미 군사훈련 중단 주장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하고 “북한이 미국과 대화하려면 적어도 2005년 9·19공동성명을 이행해 포괄적이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에 나설 의향이 있다는 점을 밝혀야 한다고 얘기해줬다”고 디트라니 전 소장은 전했다.
이번 싱가포르 접촉에는 북한 측에서 리 부상과 6자회담 차석대표인 최선희 외무성 부국장, 장일훈 주유엔대표부 차석대사, 미국 측에서 디트라니 전 소장과 스티븐 보즈워스 전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리언 시걸 미국 사회과학원 동북아안보협력 프로젝트 국장, 토니 남궁 전 UC버클리 한국학연구소 부소장이 참석했다.
디트라니 전 소장은 2005년 9·19 공동성명 당시 미국의 대북협상 특사를 맡았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
미국 전 관리 "리용호 '왜 북한만 적대시하나' 항변"
입력 2015-02-12 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