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심리전단의 사이버 활동이 정치·선거 개입이라는 항소심 판결이 나오면서 사이버전(戰)을 수행하는 국정원 활동에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리 국정원과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사이버전을 보면 극명한 차이가 드러난다. 국정원 활동범위를 명확히 규정하는 입법 논의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국가안보와 관련된 여론·심리전이 보이지 않는 사이버전쟁 성격을 띠고 있다는 데에는 항소심 재판부나 전문가들도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동국대 법학과 한희원 교수는 1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예전처럼 간첩들이 휴전선 뚫고 내려오던 시대는 갔다.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적은 점점 다원화되고 있으며 사이버전쟁은 현대사회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됐다”고 지적했다. 검사 출신인 한 교수는 국가정보 분야 전문가로 국정원 개혁 자문위원도 맡고 있다. 일명 ‘외로운 늑대(lone wolf)’라고 불리는 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활동하고 있고, 국정원이 이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판사 김상환)도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판결문에서 “경계가 없는 사이버 공간에서 이미 북한과 그 추종세력에 의해 치밀한 전략에 따른 심리전이 실제 행해지고 있다는 분석은 충분히 이해된다”고 밝혔다.
문제는 수행방식이다. 한 교수는 국정원 심리전단의 댓글 및 트위터 활동을 ‘수준 낮은’ 대응이라고 평가했다. 미 FBI가 수행하는 사이버 활동과 비교하면 수준 차이가 더욱 명백하다. FBI는 사이버 공간에서 테러와 관련된 글을 올리는 ‘현대판 간첩’들의 글을 면밀히 모니터링한다. 해당 글에 지속적으로 댓글을 달면서 반응을 살핀다. 댓글을 주고받으며 국가전복 또는 테러를 기도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해지면 본격 조사에 착수한다. 무턱대고 국정을 홍보하고, 야당을 비난했던 국정원과 다른 점이다.
국정원의 사이버 활동 범위를 명백하게 규율하는 법도 필요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이버 공간의 안보환경이 급변해 이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해도 먼저 국민의 지지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새로운 활동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국정원법 제1조는 국정원의 활동을 ‘국가안전보장 업무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필요한 사항’에 국한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안전보장을 위한 업무가 어디까지인지는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원 전 원장은 국정원의 사이버활동이 안전보장을 위한 방첩활동의 일환이라고 주장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군은 전쟁을 준비하는 기관이지만 국정원은 현재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는 피고인의 말은 강한 울림으로 간직하고 있다”면서도 “특정 사이버 활동만이 관련 법률에 반함을 명백히 지적함으로써 국정원의 헌신과 노력이 본연의 업무에만 집중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관련 규정은 받아들이는 관점에 따라 판단이 상반될 수 있는 부분”이라며 “미국의 애국법처럼 국정원이 합법적 범위 내에서 필요한 사이버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국회가 확실하게 선을 그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문제는 수행방식이야˝… 국정원과 FBI ‘사이버전쟁’, 이렇게 달랐다
입력 2015-02-11 1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