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의 어느 토요일, 대구 팔공산을 오르던 민모(당시 49세)씨는 등산을 시작한 지 40여분 만에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다 의식을 잃었다. 119구조대가 급히 대학병원 응급실로 후송했지만 45분 만에 사망했다. 사망진단서상 사인은 급성 관상동맥 증후군이었다.
산에서 의식을 잃을 때 민씨 주변엔 의사가 많았다. 의약품회사 영업사원인 민씨가 의사들과 친분을 다지는 ‘주말영업’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의약품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애쓰던 민씨는 의사들이 출장을 갈 때 운전을 대신 해줬고, 서류 발급 등 잔심부름도 마다하지 않았다. 평일 저녁에는 매일같이 거래처 의사들과 모임을 가졌다. 등산도 의사들에게는 운동이었지만 민씨에게는 사실상 주말 근무였다. ‘접대 등산’을 한 것이다.
유족들은 민씨의 사망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은 과로를 인정할만한 사항이 없고, 급격한 작업환경의 변화도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민씨가 2008년 스텐트 삽입술을 받는 등 심장질환이 있다는 사실, 과거 15년쯤 담배를 피운 전력이 있다는 것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유족은 소송을 냈고 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부장판사 이승택)는 10일 “유족 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등산 일행 중 의약품회사 측은 민씨 혼자였다는 점, 민씨가 주말에 지출한 식대는 법인카드로 충당했다는 점 등을 들어 팔공산을 업무 현장으로 판단했다. 업무와 질병 사이에 명확한 인과관계가 없더라도, 업무상 과로가 병인(病因)에 겹쳐 질병을 악화시켰다면 인과관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접대등산 돌연사도 업무상재해
입력 2015-02-10 2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