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유죄 이유는?

입력 2015-02-09 20:52
서울고법은 9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서 원세훈(64) 전 국가정보원장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준비를 해 지난 대선에 ‘불법개입’했다고 판단했다. 국정원이 작성한 선거 관련 글이 2012년 8월 박근혜 후보가 대선주자로 확정된 뒤 급증했다는 게 핵심 이유다.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이 일사불란한 국정원 지휘체계와 조직을 이용해 사실상 ‘선거 운동’을 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작성한 트위터 글 내용과 작성 시기를 정밀 분석한 결과 선거운동 목적이 충분히 확인된다고 판단했다. 2012년 7월 이후 선거 관여 글이 정치 관여 글보다 급격히 많아진 점이 근거다. 재판부는 앞서 1심에서 ‘작성자가 특정되지 않는다’ 등의 이유를 들어 증거로 보지 않은 트위터 글을 다수 증거로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13만6000여건의 선거 관련 트위터 글이 추가 증거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해당 선거글과 정치글을 포함한 27만여건 트위터 글의 작성 추이를 분석했다. 그 결과 선거운동의 목적성이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판단했다.

먼저 박 후보가 후보로 확정된 2012년 8월 20일 이후 정치글, 선거글이 급증했다. 특히 8월 1만2600여개 수준이던 선거글은 다음달 7만7400여건으로 급격히 늘었다. 앞서 1심은 선거운동의 계획성이나 능동성이 객관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며 선거법 위반을 무죄로 봤다. 하지만 2심은 “중립 의무를 무겁게 인식해야 할 시기에 오히려 사이버 활동이 증가한 것은 선거 결과에 영향을 주기 위한 능동적이고 계획적인 행위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작성 시기뿐 아니라 글의 내용 역시 선거운동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고 봤다.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에 대한 글을 보면, 6월 대선 출마 이후 참여정부 업적에 대한 부정적 의견 제시가 주를 이뤘다. 안보 문제 외에도 후보 자질 논란 및 의혹 제기, 복지 문제 등 주요 공약이 트위터 글로 게시됐다. 안철수 당시 후보와의 단일화를 비판하는 등 다양하고 광범위한 주제가 포함됐다. 재판부는 “특정 후보들의 동선 및 주요 공약에 정확하게 대입된 글이 작성된 점을 고려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국정원 직원들의 선거글 작성이 원 전 원장의 지시에 따른 행위라는 점도 인정했다. 원 전 원장이 사이버 공간 심리전 수행을 일관되게 강조했고, 특정 세력을 종북세력이라고 지칭하면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을 비난해왔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선거 국면에서 활동을 자제해야 함에도 원 전 원장은 종전 입장을 강화했고, 사이버 활동을 계속 실행할 것을 적극 용인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원 전 원장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 “국정원 업무가 본연에만 집중돼 국민의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법정구속된 원 전 원장은 “저로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한 것”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