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항소심 유죄 엇갈리는 정치권 반응

입력 2015-02-09 20:18

법원이 9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해 국정원법 위반뿐 아니라 공직선거법까지 유죄 선고를 하면서 정치권에는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1심 재판부가 ‘국정원법 유죄, 공직선거법 무죄’ 선고를 내려 박근혜정부의 불법 선거 논란이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이를 뒤집은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여권에선 국정원 대선 개입 논란이 재점화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집권 3년차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한 가운데 권력 누수 현상을 불러올지 모르는 돌발 악재가 터졌다는 위기감도 감돈다. 집권 1년차를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2년차에는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 ‘일 할 타이밍’을 제대로 갖지 못했는데 또 다시 국정 동력을 잃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가뜩이나 전날 박 대통령과 대선에서 맞붙었던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선출되면서 당선 일성으로 ‘박근혜정부와의 전면전’을 선포한 상황이다.

특히 항소심 재판부가 국정원 심리전단의 댓글 활동을 “능동적·계획적 선거운동의 핵심 요소를 갖췄다”고 판단한 만큼 ‘야당의 대선 불복사건’이라는 여권의 프레임 또한 무너져 내리게 됐다. 여당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1심에서 원 전 원장에게 공직선거법 무죄 선고가 내려지자 “국정원 대선개입 논란이 결국 야당의 정치 공세였다는 점이 드러났다”면서 야당 사과를 요구했던 때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새누리당은 겉으로는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박대출 대변인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아직 최종심이 남아있는 만큼 법원의 판단을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김영우 대변인은 “매우 유감스럽다”면서도 “국정원은 정치적으로 엄정 중립을 지켜야 하는 기관”이라고 말했다. 이명박정부 때 벌어진 일에 대한 선긋기로 해석된다. 당 내부에선 “1심 결론을 완전히 뒤집은 재판부를 납득할 수 없다”거나 “또 다시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에 불을 붙일 토대를 사법부가 제공한 것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사필귀정”이라고 환영했다. 1심 재판부에 대해 “정치적 판결을 내렸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던 때와는 180도 달라진 스탠스다. 유은혜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늦었지만 법치주의가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준 판결”이라며 “국가기관이 불법으로 대선에 개입한 것이 법적으로 인정된 만큼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당 ‘국정원 대선개입 무죄공작 저지 특별위원회’도 성명을 내고 “재판 결과를 보자고 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진실을 요구하는 국민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했다.

유죄 판결의 당사자인 국정원은 언급을 극도로 자제했다. 일절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은 채 말을 아꼈다. 국정원 관계자는 “재판부가 판단한 사항들에 대해 우리로선 가타부타 아무런 할 말이 없다”고만 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