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방역망에 구멍이 뚫렸다. 농장주는 구제역에 걸린 돼지를 전국 곳곳에 출하해 방역망을 무력화시켰고,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방역당국은 돼지를 살처분하기에 급급했다. 2중, 3중의 방역망도 축산농가의 도덕적 해이 탓에 허무하게 뚫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강원도는 지난 7일 구제역이 발생한 세종시의 한 농장에서 새끼돼지를 들여 온 철원의 돼지농장에서 돼지 610마리를 살처분하는 등 긴급 방역을 실시했다고 9일 밝혔다.
도는 지난 8일 오후 3시15분쯤 철원 갈말읍 김모(55)씨의 한 농장에서 구제역 의심신고가 들어와 역학관계를 확인하고 검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이 농장이 지난 7일 구제역이 발생한 세종시의 농장에서 새끼돼지 260마리를 들여 온 사실을 확인, 농장의 돼지를 모두 살처분했다. 이어 농장 입구에 통제초소를 설치하고 농장주 등 관계인에 대해 이동제한 명령을 내렸다.
도의 역학조사 결과 철원에 돼지를 반출한 세종시 농장주 이모(39)씨는 지난 6일부터 새끼 돼지가 폐사하고 어미돼지 40여 마리가 구제역 의심증세를 보이자 지난 7일 오후 의심신고를 하고 8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이 농가는 의심신고 5시간 전인 같은 날 오전 철원으로 260마리의 돼지를 반출했다.
더욱이 이 농가는 지난달 7일 구제역이 발생했던 농가와 직선거리로 480m에 위치해 이동제한 조치가 내려진 상태였다.
이에 따라 세종시는 이씨를 가축전염병예방법 위반(이동제한 명령 위반) 혐의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가축전염병예방법에는 이동제한 명령을 위반한 농가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강원도 관계자는 “판매하고 구입한 농가 모두 반출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돼지를 거래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동물약품 판매업자이기도 한 철원 농장주가 무슨 생각에서 돼지를 들여왔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이씨는 의심신고 이전에 강원도뿐만 아니라 경기도 포천과 남양주시, 경남 양산시 등 4개 농장에 돼지 840마리를 출하한 것으로 확인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출하한 돼지를 받은 농장에 대해 9일 뒤늦게 예방적 살처분을 실시토록 조치했다.
더 큰 문제는 돼지 840마리가 세종시에서 전국 4개 농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돼지 운반 차량이 방역망에 한 차례도 적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세종을 비롯한 경기도, 강원도, 경남 등 지자체는 고속도로 입구 등 주요 도로에 통제초소를 설치해 가축 이동 차량 등을 점검하고 있다.
강원도 관계자는 “농가가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통제초소를 피해 가축을 운반할 수 있다”면서 “고속도로나 국도가 아닌 이면도로로 차량을 이동시킬 경우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축산 농민들이 악성 가축전염병 발생국에 다녀오고도 신고를 하지 않아 검역에 구멍이 뚫린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황주홍 의원이 농식품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가축전염병발생국을 다녀온 축산관계자는 7만3614명으로 2013년(5만9046명)보다 1.2배 늘었다. 그러나 미신고자는 2013년 59명보다 6.2배 증가한 367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춘천=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
구제역 돼지 알고도 거래… 구멍 뚫린 방역망
입력 2015-02-09 1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