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의 2인자’인 국무총리 위상을 감안하면 단박에 ‘총리=대권 후보’라는 공식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헌정사에서 총리를 지낸 정치인이 대선에서 승리해 대통령이 된 사례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박정희정권이 막을 내린 1979년 당시 국무총리였다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최규하 전 대통령의 사례가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대권을 쟁취했다고 보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두 번이나 총리를 역임하며 ‘실세 총리’였다는 평을 받는 김종필(JP)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에게는 ‘영원한 2인자’라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그는 제3공화국 시절 45세의 나이로 최연소 총리에 올랐고, 김대중(DJ)정부 시절에도 총리를 지냈습니다. ‘3김(金) 시대’를 이끈 정치인 중 김 전 총재는 유일하게 총리를 지냈지만 3김 중 유일하게 대통령이 되지 못했습니다. ‘킹’은 되지 못하고 이른바 ‘DJP연합’으로 ‘킹 메이커’ 역할을 하는 데 그쳤습니다. “정치는 허업(虛業)”이라는 그의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총리로서의 능력도 대권과 크게 관련이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권력 의지’가 더 중요한 변수로 꼽힙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안정감 있게 국정을 대행했던 고건 전 총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한때 대권 후보 여론조사 1위를 차지했던 고 전 총리는 17대 대선을 11개월 앞두고 “새로운 대안정치 세력의 통합에 한계를 느꼈다”며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총리를 지낸 정치인 중 대권에 가장 근접한 인사는 누가 뭐래도 ‘대쪽 판사’ 이회창 전 총리입니다. 그런데 이 전 총리는 법조인 출신답게 헌법에 규정된 총리 권한을 요구하면서 김영삼(YS) 당시 대통령과 마찰을 빚었습니다. 사사건건 YS와 부딪혔던 이 전 총리는 결국 4개월짜리 단명(短命) 총리로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 전 총리의 국민적 인기는 오히려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두 번씩이나 대권을 거의 손에 집어 넣는 듯 했으나 큰 꿈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장남의 병역 면제 논란 때문에 떠난 민심을 되돌리지 못한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아 실세 총리로 떠올랐던 이해찬 전 총리 역시 3·1절 골프 파동으로 입은 내상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여권의 한 인사는 5일 “대통령과의 충돌을 불사할 각오까지 돼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대망을 실현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자리가 바로 국무총리”라고 말했습니다.
충청권 지지를 등에 업고 대권 잠룡으로 부상한 이완구 총리 후보자가 국회 인준 절차를 마친 뒤 정식 총리가 된다면 어떤 대권 행보를 보일까요. 또 하나의 흥미진진한 관전 포인트입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슬로뉴스]국무총리와 대권의 상관관계
입력 2015-02-05 1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