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흑인들의 이주 패턴이 100년만에 역전됐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핍박과 차별이 만연한 남부에서 도망치듯 북부로 이주했던 흑인들이 근래 들어 다시 남부로 되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21세기판 흑인들의 대이주(Great Migration)’로 불리고 있다.
미국 일간 USA투데이는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 소속 인구통계학자인 윌리엄 프레이가 최근 펴낸 책 ‘다양성의 폭발’ 등을 근거로 흑인들의 이주 행태가 100년 전과 비교해 현격히 달라지고 있다고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프레이에 따르면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미국 흑인의 90%는 남부에 거주했다. 또 대부분이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하지만 흑인들은 1910년대부터 1960년대 말까지 남부를 떠나 동북부와 중동부, 또 서부로 대거 이주했다. 이 사이 600만명의 흑인이 남부를 벗어났다. 노예해방에도 불구하고 남부에서 짐 크로우법(Jin Crow·흑인 차별을 규정한 법)이 시행되는 등 인종차별이 여전했던 게 주된 이유다. 북부에서 산업이 부흥하면서 농장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흑인들도 많았다.
이로 인해 흑인이 많이 살던 지역도 남부 조지아주, 미시시피주, 앨라배마주에서 1970년 무렵에는 북동부 뉴욕주와 중동부 일리노이주, 서부 캘리포니아주로 바뀌었다. 남부에 거주하는 흑인 비율도 54%로 뚝 떨어졌다.
하지만 2000년대 들면서 북부의 경제성장이 정체되고 남부 지역이 더 발전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업체와 첨단기업들이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텍사스주, 조지아주, 노스캐롤라이나주, 버지니아주 등에 앞다퉈 공장을 건설하면서 흑인의 남부로의 회귀를 이끌고 있다. 특히 흑인들의 교육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면서 2000년대 이후에는 대졸자 이상의 젊은 흑인들이 남부의 전문직종으로 몰리고 있다. 또 남부에 여전히 친·인척이 많이 살고 있는 흑인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한 뒤 ‘고향’을 찾고 있다. 프레이는 “선조들이 살았던 남부는 흑인 베이비붐 세대 뿐 아니라 젊은층에게도 정서적으로 친근감을 주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인구학자인 이사벨 윌커슨은 “미주리주 퍼거슨과 뉴욕 등의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 사살 사건에서 보듯 북부가 더 이상 흑인들에게 ‘이상향’이 못되고 있다”면서 인권 측면에서도 북부의 매력이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흑인들의 남부행으로 일리노이주, 캘리포니아주는 2, 3위 자리를 각각 플로리다주와 텍사스주에 내줬다. 흑인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 1위는 여전히 뉴욕주이지만 떠나는 흑인 숫자가 새로 유입되는 숫자보다 연평균(2005~2010년) 8170명 더 많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20년 간 북부와 중동부, 서부 등의 흑인 베이비붐 세대 은퇴자가 400만명에 달하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은퇴 뒤 정착지로 남부를 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美 흑인들 ´남부로 남부로´… 100년 만에 대이주 패턴 대역전
입력 2015-02-03 1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