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회항’ 사건에 대한 결심 공판이 재판 세 번째 만인 2일 열렸다. 대한항공 측이 첫 공판에서 검찰 증거에 대해 모두 동의해 사실관계를 다툴 여지가 없어져 속전속결로 재판이 이뤄졌다. 대신 대한항공은 조현아(41·여) 전 부사장 등에 항공운항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법리다툼에 ‘올인’하고 있다. 이날 공판에는 대한항공 박창진(45) 사무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오성우)는 오후 2시30분 조 전 부사장과 대한항공 객실승원부 여운진(58) 상무에 대한 결심 공판을 진행했다. 검찰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첫 기일이 잡히자마자 검찰이 제출한 증거를 모두 인정하는 내용의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며 “양측이 동의한 사실관계에 대한 법리 적용 문제만 남아 재판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측은 ‘땅콩 회항’ 당시 항공기 내부 상황에 대해서는 검찰 조사 내용을 모두 인정하되 조 전 부사장에게 적용된 항공운항법상 항공기항로변경·항공기안전운항저해폭행,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혐의가 무리라는 취지로 접근하고 있다. 한 재경지법 부장판사는 “항공운항법은 사실상 준 테러 행위에 적용되는 만큼 이번 사태에 적용하는 건 지나치게 무겁다는 취지로 항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실상 실형을 살만한 범죄는 아닌 것으로 보고 조속히 재판을 끝내 집행유예로 나오는 전략을 짠 것으로 해석된다.
박 사무장은 유니폼 차림으로 공판에 나왔다. 1일 업무에 복귀해 부산과 일본 나고야 비행을 마치고 2일 오전 서울로 복귀했다. 박 사무장이 조 전 부사장과 대면한 것은 ‘땅콩 회항’ 발생 두 달여 만에 처음이다. 피고인석에 앉은 조 전 부사장은 박 사무장이 증인석으로 나왔을 때부터 단 한 차례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박 사무장은 “조 전 부사장은 아무렇게나 다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인권, 자존감을 짓밟으며 그 날 미국 뉴욕 JFK공항에서 나를 한번 죽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19년간 회사를 사랑했던 내 마음, 또 동료들의 그 마음을 헤아려 다음에 더 큰 경영자가 되는 발판 삼길 바란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또 자신의 업무 복귀에 차질이 없도록 하고 있다는 대한항공 입장에 대해 “그런 조치를 받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받은 사실도 없다”고 반박했다. 박 사무장은 “조 전 부사장은 힘없는 사람을 봉건시대 노예처럼 생각해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했고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진정한 사과 없이 남 탓만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검사가 “관심사병 이상의 관심사원으로 관리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실제로 그런 시도가 여러 번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조 전 부사장은 “사건의 발단이 승무원들에게 있다고 보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승무원들이) 매뉴얼을 찾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그 뒤의 행동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며 “분명히 매뉴얼 부분은 (승무원)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박 사무장은 앞서 지난달 30일 열린 2차 공판에서 검찰 측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출석하지 않았었다. 재판부는 “박 사무장의 이야기도 직접 들어볼 필요가 있다”며 직권으로 그를 다시 증인 채택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땅콩재판 속전속결… 박창진 사무장 ˝조현아, 인권·자존감 짓밟았다 ˝
입력 2015-02-02 1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