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고문 룰렛’ 돌리는 필리핀 경찰… 피해자 청부살인 기도도

입력 2015-01-29 15:34
전세계 50개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유명 퀴즈쇼 ‘휠 오브 포츈’의 한 장면. 사진=국제 암네스티

필리핀 경찰의 고문 룰렛이 세상에 알려지며 필리핀 사회가 시끌시끌하다.

국제엠네스티는 수도 마닐라의 남부 라구나 지역에 위치한 경찰의 구금 시설에서 퀴즈쇼에서나 벌어질 ‘고문 룰렛’이 행해졌다고 29일 밝혔다.

룰렛에는 다양한 벌칙들이 적혀있다. ‘30초 박쥐 자세’의 경우, 구금자를 박쥐처럼 30초간 거꾸로 매달아 놓는다. ‘20초 매니 파퀴아오(필리핀의 유명 권투선수)’는 구금자에게 20초간 쉬지 않고 주먹질을 하는 것을 뜻한다.

지난해 구금시설에서 4일간의 고문을 견뎌야 했던 로웰리토 알메다(Rowelito Almeda·45)는 이 끔찍한 룰렛을 생생히 기억해냈다. 그는 “처음 룰렛을 본 것은 부엌”이라며 “경찰들은 한잔 하러 갈 때마다 수감자들을 데리고 나와서는 룰렛을 돌렸다”고 말했다. 그는 “그 중 두 명은 17살, 18살이었다”며 “경찰들은 이들에게 전기충격과 구타를 가하고, 공기총을 발사하고, 다트판 앞에 세워 두고 다트를 던지곤 했다”고 주장했다. 필리핀 인권위원회에 의해 비밀 구금 시설에서 구조된 수감자는 총 43명이었다.

로웰리토는 경찰관이 헬멧으로 얼굴을 가격하는 바람에 앞니 4개가 부러졌다.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구타를 당하고, 전기충격을 당했다. 경찰관들은 로웰리토의 입에 헝겊을 물리고, 얼굴을 테이프로 두르고 수갑을 채우며 마치 사형집행을 준비하는 듯한 행동도 했다. 로웰리토는 경찰들이 그를 ‘없애 버릴 것인가’에 대해 토론하는 대화도 엿들을 수 있었다.

하젤 갈랑폴리(Hazel Galang-Folli) 국제앰네스티 동남아시아 조사관은 “필리핀 경찰은 고문하는 행위를 재밌는 놀이쯤으로 여긴다”며 “경찰관에게는 고문이라는 극악무도한 행위가 마치 법을 초월한 양, 기소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할 수 있는 행위로 여겨지고 있다”고 말했다. ‘고문 룰렛’에 대한 공식 조사로 경찰관 10명은 직위 해제됐다. 하지만 법정에서 유죄가 선고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필리핀은 5년 전 국제 고문방지협약을 비준하고 진보적인 고문방지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수감자들을 고문했던 가해 경찰관 중 고문방지법에 따라 유죄가 선고된 것으로 알려진 가해자는 한 명도 없다.

국제앰네스티는 “고문피해자들이 경찰관이나 그들이 고용한 폭력배에게 보복, 괴롭힘, 협박을 당할 것을 두려워 해 감히 경찰에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다”며 “소송을 걸더라도, 과정과 규칙이 불분명하고 일관적이지 못하다”고 말했다.

필리핀 경찰은 로웰리토가 구금시설에서 구조된 이후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합의를 시도했다. 경찰은 로웰리토에게 인권위원회가 그를 대신해 제기한 고문 관련 소송을 취하한다는 내용의 서류에 서명하게 강요했다.

심지어 경찰관은 로웰리토를 청부살인하려 했다. 이후 로웰리토는 소송을 계속하기로 결심했다. 경찰관이 살인을 의뢰한 사람은 로웰리토의 사촌이었다.

국제앰네스티는 “법 위에서, 필리핀 경찰의 고문 실태” 보고서를 발표했다. 필리핀 의회는 국제앰네스티가 밝힌 내용에 관련해 경찰 고문에 대한 청문회를 열었다. 하지만 청문회에 참석한 필리핀 경찰 측 대표는 보고서에서 다뤄진 고문 사례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진술했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