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금실 좋게 단둘이 살던 A(70)씨 부부는 경제적으로나 사회, 가정적으로나 어려울 것이 없었다. A씨 본인도 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태였으며 명문대를 나온 뒤 대기업에 다니던 아들 등 자식들과 왕래도 잦았다. 소위 남들이 부러워하는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3년전 두 살 아래인 아내가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 노부부의 평온함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아내는 요양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고, A씨는 아내를 극진히 보살폈다. 그러나 식물인간 상태였던 아내와 어떠한 대화도 나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지난 19일 A씨는 돌연 자식들의 반대에도 요양병원에서 아내를 퇴원시켜 집으로 옮겼다.
아내를 퇴원시킨 지 사흘째, 지난 22일 낮 A씨는 아내를 목 졸라 살해했다. 자신도 제초제와 살충제를 섞어 마셔 자살을 기도했다. A씨는 2주 전 이미 힘든 상황을 정리하기로 마음 먹고 제초제와 살충제를 구해 놓았다.
그는 독약을 마시며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 다 끝났다”는 말을 남겼다.
황급히 집으로 찾아간 아들은 이미 숨을 거둔 어머니와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A씨는 치료 끝에 목숨을 건져 홀로 남게 됐다.
A씨는 26일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 관계자는 “사정은 딱하지만 제초제를 미리 준비했던 점에서 계획된 범행으로 보여 실형이 불가피해 구속했다”고 설명했다. 또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하면 또다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어 격리 상태에서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홀로 남은 A씨는 경찰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렇게 힘들게 사는 게 되겠나라고 생각해 결심을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위적인 죽음은 용납될 수 없지만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누구나 부딪힐 수 있는 문제이기에 무거운 숙제를 던지는 사건이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은 연명 치료를 끊은 게 아닌 점에서 존엄사라고 부를 수 없다” 면서도 “A씨의 상황이나 심정은 마음 아픈 울림을 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웰다잉(well-dying) 혹은 품위 있는 죽음인 존엄사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김태희 선임기자 thkim@kmib.co.kr
“사랑하지만 이렇게 사는 건…” 아내 병시중 70대의 극단적 선택
입력 2015-01-29 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