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호주에서 열리는 아시안컵 원정 길에 오를 때 항간에는 이런 우스개 소리가 있었습니다. “귀국길 공항에서 시진핑의 환영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왕치산을 볼 것인가.”
시진핑 국가주석은 축구광으로 알려져 있고 중국 최고지도자입니다. 왕치산은 중국에서 반부패 사정의 최고 수장으로 ‘저승사자’로 통합니다. 한마디로 공항에서 왕치산을 보고 쇠고랑을 안차려면 열심히 잘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라는 우스개성 압력일 것입니다.
지난 25일 새벽 중국 국가 대표팀이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이른 새벽인데도 100여명의 팬들이 플래카드와 꽃다발을 들고 대표팀을 환영했습니다. 아쉽게 4강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아시안컵 사상 최초로 조별 라운드 3전 전승을 거두며 조 1위로 8강전에 오른 데 대해 국민들은 환호했습니다. 공항에는 시진핑도 왕치산도 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중국공산당 사정·감찰 총괄기구로 왕치산이 이끄는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발표한 글이 대표팀을 맞이했습니다. ‘아시안컵, 중국 대표팀의 진보로부터 무엇을 봐야하나’라는 제목의 논평입니다. 요지는 반부패가 바로 중국 축구의 진보를 이끌었다는 주장입니다만 축구를 좋아하는 국민들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승부조작과 뇌물이 판쳤던 중국 축구
그동안 중국 축구는 ‘가짜 축구(假球)’와 ‘검은 호루라기(黑哨)’로 불렸습니다. 승부 조작이 난무했으니 ‘가짜 축구’였고 심판은 매수됐으니 ‘검은 호루라기’를 불며 거짓 판정을 했습니다. 중국 공안 당국은 2009년 승부조작과 뇌물로 얼룩진 중국 축구에 칼을 겨눕니다. 2년여의 수사 끝에 중국 축구계를 좌지우지하던 조선족 출신의 난융 중국축구협회 부주석을 비롯해 국가대표 선수, 감독 등 33명이 줄줄이 구속됩니다. 재판에 넘겨진 난융과 또 다른 축구협회 부주석 셰야룽은 10년 이상의 형을 선고받습니다.
중국 축구의 승부조작은 ‘대륙의 별’로 불리며 중국 축구를 평정했던 한국인 이장수 감독의 증언으로 생생하게 전해들을 수 있었습니다.
“칭다오 감독 시절 우리 팀은 중위권 정도였는데 1위 팀하고 경기에서 전반에만 우리가 4골을 넣었다. 그러다 갑자기 수비수들이 어이없게 골을 계속 줘 순식간에 4 대 3이 됐다. 이상하다 싶었다. 알고 봤더니 양 팀 다 서로 다른 도박 조직 브로커로부터 매수된 것이었다. 우리는 져야 하는데 모르고 있던 용병 공격수들이 골을 계속 넣자 수비수들이 골을 내줬던 것이다. 상대팀도 우리에게 지도록 승부조작 사주를 받아 처음부터 골문을 열었던 것이다. 서로 다른 도박 조직에서 져달라는 사주가 들어온 거였다. 그날 경기는 6 대 5였다.”
“도박에 걸린 판돈이 수천억원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어마어마한 액수의 승부조작 판이기에 가담자들이 받는 돈도 상상을 초월했다. 실패하면 선수들에게도 보복이 따른다. 잘 뛰던 선수가 갑자기 안 보이면 승부조작에 실패해 조폭에 잡혀가 행방불명된 경우였다.”
이장수 감독이 중국에서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지도력도 지도력이지만 폭력배들의 승부조작 압력을 뿌리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축구광 시진핑, 중국 축구 부흥 이끈다
중국 축구는 이제 달라진 듯합니다. 그동안 비리 사건으로 축구를 외면했던 국민들도 다시 축구장을 찾고 있습니다. 중국 프로축구 슈퍼리그(CSL)의 관중 동원률은 평균 1만8000명으로 아시아 1위, 세계 10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중국 축구계의 비리를 걷어낸 것은 후진타오 전 주석 시절입니다. 그 토대 위에 시 주석은 ‘축구 공정’과 ‘축구 굴기’를 통해 중국 축구의 부흥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시 주석은 2011년 부주석 시절 세 가지 소원이 있다며 “중국이 월드컵 본선에 나가는 것, 월드컵을 개최하는 것,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집권 후 초·중학교 체육에서 축구는 필수과목으로 지정됐고, 2017년까지 2만개 안팎의 초·중학교를 축구특색학교로 육성한다는 계획도 발표됐습니다. 최근 교육부장(교육부장관)이 이끄는 ‘청소년 교내축구 공작영도소조’도 발족됐습니다. 중국 청소년 축구사업 정책을 총괄하는 기구로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재정부,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 국가체육총국, 중국공산주의청년단 인사들까지 참여한다고 합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와 부동산개발 업체인 헝다그룹, 다롄완다 등은 앞다퉈 프로축구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다롄완다그룹은 최근 4500만유로(약 565억원)을 투입해 프리메라리가(스페인 프로축구리그) 명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지분 20%를 인수했습니다. 중국 축구의 부흥이 멀지 않았다는 얘기가 곳곳에서 들립니다.
#반부패와 중국의 부흥
다시 중국 축구 대표팀을 맞이했던 중앙기율위의 글로 돌아갑니다. 결국 이 말을 하고 싶었을 겁니다. “거짓과 도박을 몰아내고 깨끗한 축구장을 건설한 것은 건강한 축구 발전의 근간이었다. 경제사회 발전도 또한 마찬가지다. 부패라는 사회의 악성종양을 제거하는 것은 경제사회 지속발전의 기초이자 보장이다.”
중국 축구에서 보듯 중국의 반부패 운동은 중국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이 조금씩 두려워집니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
[맹경환 특파원의 차이나스토리] ④시진핑 볼래 아니면 왕치산 볼래
입력 2015-01-28 17:36 수정 2015-01-30 1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