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 전 의원은 28일 격월간지인 바이오그래피와 인터뷰를 통해 ‘한국정치의 경계인(境界人)’으로 살아온 정치 역정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김 전 의원은 경북 상주 태생에 경북고를 나온 TK성골이다. 그러나 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한 그는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DJ 앞잡이’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어야했다고 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한국 정치가 얼마나 비극인 줄 아느냐. DJ 정권 때 청와대에 입성한 야권 인사들이 민주당 경력 증명서를 떼려면 한나라당에 가야 했다. 왜냐하면 법적으로 민주당의 뿌리를 흡수한 당은 한나라당이니까. 민주당에서 일한 경력은 거기서밖에 못 떼요. 이게 우리 정치의 현실인데 젊은 친구들이 그런 것도 모르고 나를 계속 공격했다”고 밝혔다.
이어 “경상도 사람이 야권에서 정치를 한다는 건 가혹한 것”이라고 술회했다. 김 전 의원은 “내가 명확하게 어느 한편을 드는 정치 노선을 택했다면 이런 오해는 안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책임을 져야 하는 국회의원이 되고 보니까 선명함에 문제의 해답이 있는 게 아니더라”고 말했다.
그는 “진영 논리에 충실하고 상대편에게 고함을 치는 게 다가 아니었다. 처음 정치를 할 때 생각했던, 가난하고 억눌리고 힘든 사람들의 삶을 단 한 보라도 전진시킬 수 있는 성과물을 내려면 여야가 공존하는 수밖에 없었다”며 “당에선 온건파로 불리면서 욕을 먹기도 하지만 제정구가 던진 ‘상생’이란 화두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고집을 가지고 지금까지 왔다”고 밝혔다.
김 전 의원은 내리 3선을 한 수도권(경기 군포)의 지역구를 내려놓고 여당의 텃밭 대구로 갈 때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갈등했다고 한다. 마음으로는 이미 결정을 내렸지만 선뜻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때 기억난 책이 ‘남한산성’이었다. 47일간 산성을 떠돌던 비루하고 허망한 말들과 백성의 실제적 삶이 떠올랐다. 고민 끝에 그는 말이 아닌 실천의 정치를 택했다. 그러자 마음이 홀가분해졌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김 전 의원은 2012년 4월 민주당 간판을 달고 대구 수성갑에 출마했으나 떨어졌다. 2014년 대구시장 선거에 다시 한 번 도전했다. 40.3%를 얻어 낙선했다. 역대 야권 후보의 득표율 중 가장 높았다. 2016년 4월 제20대 총선에서 대구에 출마할 계획이다.
바이오그래피 이연대 편집장은 “그 넓은 민주당사에 경상도 사투리 쓰는 사람이 나 말고 딱 두 명 더 있더라”는김 전 의원의 말을 전하며 “그의 곤고한 삶을 관통하는 말”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그 말에는 ‘호남 세력이 주류인 정당에서 활동하는 TK 출신 정치인’이라는 명료한 정의에는 담을 수 없는 삶의 구체성이 담겨 있었다”고 전했다.
이 편집장은 “그는 진보와 보수, 호남과 영남의 경계에서 외로운 싸움을 해 왔다”며 “김부겸을 통해 ‘경계境界’를 ‘경계警戒’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경계를 맴도는 많은 현대인들이 그의 삶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바이오그래피 매거진은 한 호에 한 인물을 집중 소개하는 격월간지로, 광고가 없고 양장본으로만 발행한다. 2호인 이번호는 김 전 의원의 삶을 11개 에피소드로 엮었다. 여러 인물의 삶을 통해 경계에 대해 고찰하는 ‘마지널 맨’(MARGINAL MAN), 그의 명언을 모은 ‘세잉’(SAYING) 등 코너가 마련됐다. 그의 아내 이유미 씨가 밝힌 소회도 담겼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
김부겸 “한국 정치가 얼마나 비극인 줄 아느냐”
입력 2015-01-28 14:29 수정 2015-01-28 1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