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2015 호주아시안컵 결승 진출을 확정한 지난 26일 시드니 스타디움. 하프타임으로 경기를 잠시 중단한 오후 7시쯤 경기장 밖에서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주변에서 쏘아올린 불꽃이었다. 불꽃은 남반구의 여름 밤하늘을 수놓으면서 장관을 연출했다. 호주 최대 국경일인 건국일을 기념한 축제였다.
불꽃은 1대 0으로 앞선 채 전반전을 마친 우리나라의 결승 진출을 기원하는 듯 보이기도 했고, 후반전에서 반격과 역전을 노려야 할 이라크를 응원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개최국 호주가 계획했던 불꽃놀이의 주인공은 우리나라나 이라크가 아니었다. 스스로를 위한 것이었다. 적어도 호주가 이번 아시안컵의 개막을 앞두고 아시아축구연맹(AFC)과 함께 일정표를 그릴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호주는 아시안컵의 주경기장 격인 시드니 스타디움에서 클라이맥스를 준비했다. 올림픽과 월드컵을 포함한 모든 국제대회의 개최국이 그랬던 것처럼 호주는 대진표와 일정표를 유리하게 작성했다. 이런 대진표와 일정표상 조별리그 A조를 1위로 통과하고 8강전에서 승리하면 국경일에 시드니 스타디움에서 4강전을 벌일 수 있었다.
시드니 스타디움의 8만3500석을 가득 채울 자국 관중들과 하프타임에 불꽃놀이로 축제를 즐기고 후반전에 결승 진출을 확정하기만 하면 가장 완벽한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었다. AFC 회원국들 가운데 최고 수준인 호주의 전력을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호주의 계획은 지난 17일 브리즈번 스타디움에서 열린 조별리그 3차전에서 틀어졌다. 조별리그 2차전까지 쿠웨이트, 오만에 4골씩 퍼부어 조 1위를 질주하고 있었던 호주는 3차전에서 우리나라에 0대 1로 덜미를 잡혔다. 전력이 비슷한 우리나라와 비기기만 해도 조 1위를 확정할 수 있었지만 우리나라의 ‘늪 축구’에 발이 빠져 허우적거렸다. 간판 공격수 로비 크루세(레버쿠젠)와 후반 종반에 투입돼 회심의 일격을 노렸던 베테랑 팀 케이힐(뉴욕 레드불스)은 우리나라의 골문을 열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호주가 대진표와 일정표를 그리면서 계획했던 시나리오를 토너먼트 라운드에서 그대로 이어받았다. 혜택은 컸다. 휴식기간은 길어졌고 이동경로는 짧아졌다.
A조 1위는 토너먼트의 모든 경기를 가장 먼저 시작하면서 다음 라운드에 만날 상대보다 하루씩 휴식을 얻을 수 있다. 조별리그 3차전에서 8강전까지 우리나라의 휴일은 4일이었지만 B조의 우즈베키스탄은 3일이었다. 8강전에서 4강전까지 우리나라는 사흘을 쉬고 이라크는 이틀을 쉬었다. 이라크의 경우 조별리그 3차전과 4강전 사이의 휴일이 4일뿐이었지만 우리나라는 7일이었다.
우리나라는 4강전에서 결승전까지의 휴식도 벌었다. 우리나라는 호주보다 하루를 더 쉬었다. 지난 27일 오후 6시 뉴캐슬 스타디움에서 열린 4강전에서 호주가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싸우는 동안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지시로 하루의 휴식을 얻은 우리 선수들은 숙소에서 편안하게 앉아 경기를 시청하거나 개인 훈련을 하고 있었다.
숙소에서 짐을 꾸려 이동하고 새 숙소에서 다시 여장을 푸는 분주함도 4강전부터 사라졌다. A조 1위는 일정표상 4강전과 결승전을 모두 시드니 스타디움에서 치른다. 같은 조 2위는 4강전을 뉴캐슬 스타디움에서 치르고 직선거리로만 100㎞인 시드니 스타디움으로 이동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호주보다 하루를 더 쉰 상태에서 짐을 챙겨 이동하는 수고까지 덜었다. 호주의 국경일에 하프타임 불꽃놀이로 충전한 사기는 보너스였다.
길어진 휴식기간, 짧아진 이동경로, 국경일 축제의 클라이맥스를 호주로부터 빼앗은 셈이다. 우리나라는 오는 31일 오후 6시 시드니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결승전에서 승리하고 우승하면 호주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호주아시안컵 Day20] 호주가 미친 듯 뛸 때 한국은 소파에 앉아 “히히”… 우리가 빼앗은 3가지
입력 2015-01-28 13:14 수정 2015-01-28 1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