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아시안컵 Day19] “결국엔 이기는 실학축구 만세” 다산 슈틸리케 선생 신드롬… 왜?

입력 2015-01-27 10:54
조선말기 실학자 정약용의 인물화에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얼굴 사진을 합성한 그림이 인터넷 커뮤니티사이트에 등장했다. 슈틸리케 감독의 실용적인 지도력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아슬아슬하지만 결국엔 승리한다. ‘골 폭격’을 퍼붓는 한 경기의 화려함보다 승리에 집중하면서 결승까지 바라보는 차분함을 선택한다. 실용을 앞세운 울리 슈틸리케(61·독일) 축구대표팀 감독의 지도력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조선말기 실학자 정약용의 호를 붙인 ‘다산(茶山) 슈틸리케 선생’이라는 별명까지 나왔다.

27일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사이트에는 정약용의 인물화에 슈틸리케 감독의 얼굴 사진을 붙인 합성 게시물이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다산 슈틸리케 선생님을 그동안 알아보지 못해 죄송합니다” “일본, 중국, 중동 등 열강의 급성장으로 아시아의 ‘호구’로 전락했던 우리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울 실학 축구를 완성해주세요” “무실점의 ‘늪 축구’를 집대성한 책자를 발간해 대대손손 물려주세요”라는 축구팬들의 의견이 나왔다. 무실점 전승으로 2015 호주아시안컵 결승까지 대표팀을 이끈 지도력을 재조명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6일 호주 시드니 스타디움에서 열린 4강전에서 이라크를 2대 0으로 격파했다. 1988년 카타르 대회로부터 27년 만에 결승으로 진출했다. 아시안컵 원년인 1956년 홍콩 대회와 개최국으로 출전한 1960년 대회를 제패하고 55년 동안 탈환하지 못했던 정상은 눈앞으로 다가왔다. 우리나라는 앞서 조별리그 세 경기를 모두 1대 0으로 승리했다. 이 가운데 두 경기는 오만과 쿠웨이트 등 상대적 약체와의 승부였다. 골 결정력 부족에 대한 지적이 나왔지만 분위기는 토너먼트 라운드부터 뒤집어졌다.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과 이라크와의 4강전을 모두 2대 0으로 완승하면서 ‘일대영’이라는 조롱은 ‘늪 축구’ ‘실학 축구’ ‘슈틸리케 매직’이라는 찬사로 바뀌었다.

선수 한두 명에게 의존하지 않고 조직력으로 승부하는 독일식 전술, 상대 팀을 도발하지 않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우승후보 자격상실 선언과 같은 충격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 화법,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부름을 받지 못했던 공격수 이정협(상주 상무)과 조영철(카타르), 베테랑 수비수 차두리(서울), ‘슈퍼 세이브’ 골키퍼 김진현(세레소 오사카) 등을 발굴한 안목은 슈틸리케 감독만의 강점이다.

“한국은 감독을 교체하고 선수를 바꿨지만 놀랄 만한 변화는 없었다”고 도발했지만 결국엔 무릎을 꿇었던 호주의 엔제 포스테코글루(50·그리스) 감독, 8강에서 탈락해 조기 귀국하고도 “축구를 잘 아는 사람은 우리를 칭찬했다”고 핑계를 댄 일본의 하비에르 아기레(57·멕시코) 감독과는 비교되는 대목이다.

우리나라는 1988 카타르아시안컵으로부터 27년 만에 결승으로 진출했다. 외국인 감독 체제에서는 처음이다. 오는 31일 호주 시드니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결승전에서 승리하면 슈틸리케 감독은 55년간 탈환하지 못했던 우승컵을 들고 우리나라로 돌아온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