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팀 취재수첩] 양심 없는 한국사람들, 515만원이 돌아오지 않았다

입력 2015-01-26 17:39

지난해 12월 31일 115만원이 돌아왔다. 이틀 뒤 55만원, 다시 하루 뒤 30만원, 그리고 이번엔 22일이나 훌쩍 지난 25일에서야 85만원이 반환됐다.

이 돈은 지난달 29일 대구 송현동의 한 도로에서 20대가 뿌린 현금 800여만원 중 일부다. 당시 CCTV 영상에는 5만원권 지폐 160여장이 하늘에 휘날리고, 몰려든 시민들로 아수라장이 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800만원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20대 청년은 할아버지가 평생 고물을 팔아 모은 돈을 뿌렸다. 사고 직후 대구지방경찰청은 SNS에 ‘하늘에서 떨어진 돈이 아니라 할아버지가 아픈 손자에게 물려준 귀한 돈입니다. 사정을 모르고 습득한 분은 원주인에게 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는 호소문도 올렸다. 이후 한 달여간 회수된 돈은 285만원. 아직 515만원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누군가의 손에 있을 것이다. 800여만원이 사라지는 데 불과 1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이 돈이 모두 돌아오려면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반면에 주운 돈을 온전히 돌려준 경우도 있다. 2000년 공항 화장실에서 주운 현금 300만엔(한화 약3000만원)을 주인을 찾아 되돌려준 양심적인 공익근무요원이 있었다. 지난해 9월 미국 보스턴에서는 한 노숙자가 미화 2400달러에 여행자 수표 4만 달러가 든 돈 가방을 지나가던 경찰관에게 망설임 없이 건네줬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양심의 자유를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 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헌재 1996.3.27, 96헌가11)로 정의하고 있다. 앞서 두 사례의 주인공은 이 ‘마음의 소리’에 충실한 것이고 주운 돈을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은 사람은 ‘욕망의 소리’를 따랐을 테다.

저 20대 청년은 직접 돈을 뿌렸기 때문에 돈을 가져간 사람이 절도죄나 점유이탈물횡령죄로 처벌받지는 않는다. 그래서 공동체적 양심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양심은 내심에 머물 때가 아니라 행동으로 옮겼을 때 그 의미를 갖는다.

515만원은 시민의 사라진 양심과 함께 돌아오지 않고 있다. 경찰이 왜 돈을 뿌렸냐고 묻자 손자는 “돈을 뿌린 것이 죄가 되느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어쩌면 그는 우리 사회를 시험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임지훈 기자 zeitgeis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