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계에서는 회춘과 중병 치료에 획기적인 방법으로, ‘안아 주기’가 부상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전문적으로 안아 주는 직업이 생길 정도다. 우울증 환자들을 비롯해 다양한 환자들에게 상당한 치료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이 ‘안아 주기’ 치료는 30분에 60달러 정도, 1시간에는 100달러 정도로 치료비가 비싼 편이라고 한다.
여성을 안아 줄 경우 여성에게서 옥시토신이라는 성 호르몬이 분비되어 세포를 활성화시키고 병을 치료해 준다고 한다. 특히 면역력이 크게 오른다고 한다. 남성에게서도 남성 호르몬이 분비되어 동일한 치료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 호르몬은 안아 주는 것 같은 육체적인 접촉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선행을 베풀 때 분비된다고 한다. 평생 빈민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한 테레사 수녀의 이름을 따 ‘테레사 효과’라고 한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배려하며 따뜻하게 정신적으로 안아 줄 때 이 호르몬이 나와 자신의 병을 치료한다는 것이다. 직접 선행을 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이 하는 선행을 보고 감동하기만 해도 이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용서와 화해의 행위가 자신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무병장수하게 해 준다는 것은 놀라운 발견이다.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어린이 폭행 사건으로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어린이를 폭행하는 것은 절대 용납될 수 없는 매우 잘못된 행동이다. TV를 보며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 보육교사가 무척 원망스러웠다.
아내가 혼자서 손주 네 명을 반나절 가량 돌본 적이 있다. 정말 힘이 들었다. 한 녀석이 장난을 치기 시작하면 한 녀석은 울고 있다. 하루 온종일 보라고 하면 도저히 못할 것 같았다.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고 손주들이 집에 가고 나자 녹초가 됐다.
몇 명도 돌보기가 이렇게 힘든데 열 명 이상 되는 아이들을 매일 가르치고 밥 먹이고 보호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들 중에 자신의 아이들을 키우면서 한 번도 매를 들지 않았던 부모가 과연 있을까? 어떤 부모들은 심지어 이 보육교사보다 더 심하게 아이를 대하기도 한다. (물론 이렇게까지 심하게 아이를 학대하는 것은 옳지 않은 방법이다.)
그러나 아이에게 매를 들려면, 혼을 내고 난 후에 하는 행동이 더 중요하다. 아이를 안아 주고 달래 주어 부모가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하고, 왜 아이를 혼낼 수밖에 없었는지 잘 타이르는 것이다. 이것이 ‘안아 주기’ 치료법이다.
보육교사가 과연 어떠한 방법으로 아이들을 안아 주었는가가 제일 중요한 점이라 생각한다. 만약 교사가 아이들에게 ‘안아 주기’를 제대로 해 왔다면, 그의 행위가 이 정도의 파장을 일으키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이제 분노를 조금 가라앉히고 좀 더 차분해지자. 우리의 분노는 결국 우리의 건강에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또한 자신의 아이를 키우기 힘들어 어린이집에 맡기고 느긋하게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부 엄마들의 양심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국가의 양육비 지원이 ‘내 아이는 내가 키워야 한다’는 옛날 어머니들의 마음을 몇몇 젊은 엄마들에게서 빼앗아 갔는지도 모르겠다는 슬픈 생각이 든다.
보육교사는 아직 월급이 적은 사회적 약자다. 이 또한 가슴 아픈 일이다. 이제는 우리가 그 보육교사를 안아 줄 차례다. 그를 안아 주고, 그에게 아이들을 따뜻하게 안아 주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어떨까 한다.
성경을 읽으며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이다. ‘왼 뺨을 맞으면 오른 뺨도 내밀어라’, ‘5리를 동행하자고 하면 10리를 동행하라’, ‘겉옷을 빼앗기면 속옷도 주어라’ 등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가르침이다. 이것을 누가 과연 실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그러나 이를 실천하고 철저히 따랐던 분이 계셨다. 바로 손양원 목사님이다. 신사 참배를 거부해 감옥에 갇혀 일본인들로부터 죽을 고생을 했으나 그들을 용서했고, 여순 사건 때 자신의 두 아들을 공산당에게 잃고도 오히려 그들을 용서했다. 게다가 자신의 아들을 죽인 학생을 자신의 양아들로 입양해 그의 사형을 면케 하였다. 그리고 자신도 6.25 한국전쟁 때 공산당에게 목숨을 잃었다.
그는 또한 천형의 한센병 환자를 평생 사랑했던 분이다. 이분이야말로 사랑을 실천하신 분이다. 그래서 이분을 ‘사랑의 원자탄’이라 부른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몸으로 실천한 분이다.
기독교의 최고의 가르침은 ‘형제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다. 지키기 쉽지 않은 가르침이다. 이보다 더욱 지키기 힘든 것이 바로 ‘원수를 사랑하라’다. 머리로는 이해를 하나 실천하기는 무척 어려운 가르침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라며 힘들어 했던 사도 바울의 탄식도 생각해 본다.
나도 조금이라도 이를 실천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 이 실천을 통해 나의 건강이 좋아지고 회춘할 수 있다는 욕심도 있겠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고 싶다는 욕심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안아 주자. 보육교사도, 우리에게 악을 행한 자도, 그리고 나를 괴롭히고 저주한 자들까지도 품어 보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우리와 함께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힘으로는 되지 않아도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능히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한국유나이트문화재단 이사장, 갈렙바이블아카데미 이사장
[강덕영 장로 칼럼-종교인과 신앙인 (107)] 어린이집 보육교사를 위한 변명
입력 2015-01-27 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