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칼럼]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시니 뭘 더 바래

입력 2015-01-26 10:33

어느 목사님이 시골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애제자로부터 설교 부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제자가 어떻게 목회를 하고 있나 궁금하기도 하고, 가서 목회에 도움을 주고 싶기도 하고 해서 기꺼이 설교해 주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며칠 후에 제자 목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주보를 만들어야 하는데 설교할 본문과 제목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선뜻 떠오르는 생각대로 시편 23편 1절로 6절까지 말씀을 본문으로 하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제목은 무엇이라고 할지 묻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로 하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애제자 목사님이 “그게 답니까? 뭐 더 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그에 대한 답으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하면 되었지 뭘 더 바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더 하고 싶은 말은 나중에 만나서 하자는 뜻으로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 후에 그 교회에 설교를 하러 가서 주보를 보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주보에 나와 있는 설교 제목이 너무 눈에 거슬리게 보였습니다. 설교 제목이 강조되듯 굵은 글씨체로 인쇄된 것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뭘 더 바래?”였습니다.

아무리 시골교회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센스가 없이 목회를 할까? 설교 제목이 이게 뭔가? 하면서 민망해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설교를 하다가 자신이 더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뭘 더 바래?" 그 말이 너무 마음에 와 닿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할 때에 천지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함께 하시면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을 하면서 막상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은 우리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시면, 나의 모든 문제를 다 아시고 가장 적절할 때에 가장 만족하게 해결해 주실 것인데, 그것을 믿지 못하고 당장 눈에 보이고 손에 쥐어지는 다른 것을 구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시란 말 하나만 있더라도 다른 모든 것을 기꺼이 다 포기할 수 있는 자세입니다.

바울은 사도가 되기 전에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었고, 사람들이 공경하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고, 당시 최고의 신분으로 여겨졌던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최고의 학문을 자랑하는 가말리엘 문하생이었고, 산헤드린 공회원이라고 하는 사회적 신분도 가지고 있었고, 무엇을 하든지 열정적으로 하는 적극적 성격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도가 된 이후에 그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여호와가 목자가 되시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바라며 살고 있습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뭘 더 바래?” 이런 질문을 계속한다면 보다 더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양흡 목사(대전 대동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