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호주아시안컵 8강전이 열린 지난 23일 시드니 스타디움. 정규시간과 연장전을 더한 120분 동안 1대 1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일본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UAE는 그라운드의 전술 대결을 대등하게 끌고 왔지만 경험과 집중력의 싸움인 승부차기까지 승리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2000년대 들어 가장 많이 우승한 ‘디펜딩 챔피언’ 일본의 기세는 높았다. 적어도 UAE 앞에서는 그랬다.
UAE는 선공을 잡았다. 승부차기에서 상대적으로 승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선공은 UAE에 남은 마지막 희망이었다. 일본의 혼다 게이스케(29·AC 밀란)가 실축하고 이어진 UAE의 두 번째 키커는 공격형 미드필더 오마르 압둘라흐만(24·알 아인)이었다. 브라질 수비수 다비드 루이스(28·파리 생제르맹)와 같은 헤어스타일로 UAE에서 가장 ‘튀는 선수’였다.
골문으로부터 11m 지점에 놓인 공과 일본 골키퍼 가와시마 에이지(32·스탕다르 리에주)를 번갈아 보며 심호흡을 한 압둘라흐만은 결심한 듯 공을 향해 달려가 왼발을 내밀었다. 에이지는 왼발 슛을 시도한 압둘라흐만의 방향을 읽은 듯 왼쪽(압둘라흐만의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공은 예상 못한 곡선을 그렸다.
압둘라흐만이 살짝 띄운 공은 느린 속도로 낮은 곡선을 그리며 골문 중앙으로 들어갔다. 에이지에게도, 관중에게도 허무한 순간이었다. 승부차기 시작과 함께 에이지를 포함한 일본 선수단을 혼란에 빠뜨린 ‘파넨카킥’이었다.
파넨카킥은 1976년 유고슬라비아에서 열린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76)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체코의 우승을 확정한 안토닌 파넨카(67)의 슛에서 유래했다. 파넨카는 서독과 2대 2로 비기고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4대 3으로 앞서 한 골만 더 넣으면 우승을 확정할 수 있는 체코의 마지막 5번째 키커였다. 왼쪽과 오른쪽을 향한 강슛만 있었던 승부차기에서 파넨카는 재치 있게 골문 정면으로 느리게 찬 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이후부터 파넨카의 슛을 모방한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파넨카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본의 간판스타 카가와 신지(26·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실축했다. 압둘라흐만에게 ‘파넨카킥’을 얻어맞은 충격의 여파였다. UAE는 예상을 뒤집고 승부차기에서 5대 4로 승리했다. 이번 아시안컵 최대 이변이었다. 4강으로 진출한 UAE는 오는 27일 오후 7시 뉴캐슬 스타디움에서 개최국 호주와 대결한다.
토너먼트 종반으로 갈수록 승부차기는 가장 중요한 변수다. 선수들의 체력과 정신력이 고갈돼 정규시간이나 연장전에서 골을 넣지 못하고 승부차기에서 승부를 가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선수별로 선호하는 슛의 방향은 물론 파넨카킥을 포함해 변형된 슛을 분석하는 것이 전술 구상만큼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오는 26일 오후 6시 시드니 스타디움에서 결승 진출권을 놓고 싸운다. 상대는 2007년 동남아 4개국 대회 4강전에서 승부차기 패배를 안겼던 이라크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UAE 미드필더 오마르 압둘라흐만의 ‘파넨카킥’ 영상(유튜브)
[호주아시안컵 Day17] “일본 농락은 이렇게 톡”… 멘붕 빠뜨린 UAE의 파넨카킥
입력 2015-01-25 15:41 수정 2015-01-25 17:43